[한국목재신문=김미지 기자]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 위치한 도심 속 한옥마을 서울 가회동. 이곳에 지하층을 활용해 협소한 대지의 한계를 극복한 L자 구조의 한옥이 단아하게 자리잡고 있다. 올해 서울시우수한옥에 선정된 가회동 L한옥은 전통적인 격식을 갖추면서 짜임새 있는 공간구성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L한옥을 지은 김장권 북촌HRC 대표를 만나 한옥의 현주소와 재생가옥의 가치를 들어봤다. 그는 20년간 한옥만을 지어온 한옥 전문 건축가다.

한옥, 옛 전통 문화재 아닌 ‘일상의 집’으로 다가서다
“한옥을 집으로 보지 않고 문화재, 작품 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생각은 한옥을 우리 일상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더 이상 한옥이 무겁고 어려운 집이 돼서는 안 된다. 건축가도 최대한 자신의 색깔을 배제해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일상의 집이 되도록 설계해야 한다.”

김장권 대표는 1990년도부터 지금까지 주택을 비롯해 상업, 갤러리 공간 등 다양한 용도의 한옥을 손수 지었다. 한옥은 한 채 짓는 데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까지도 걸리는데 이렇게 지은 한옥이 현재까지 240채가 넘는다. 20년을 ‘한옥바라기’로 살았던 그가 한옥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건축주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김 대표는 “시공 의뢰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건축주들과 ‘살고 싶은 집’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며 “집에 대한 로망부터 직업, 라이프스타일, 식습관, 생활 및 수면습관, 삶의 철학까지 건축주와 최대한 많은 주제로 이야기하며 그에게 꼭 맞는 집을 계획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집은 건축가가 다 지었다고 해서 완성되는 게 아니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가구를 들여 놓고, 취향에 맞게 인테리어 하고, 삶의 흔적을 채워나가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올해 서울시 우수 한옥으로 지정된 가회동 L한옥에도 그의 건축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곳은 성북동의 성곽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현대 주거 생활에 필요한 기능을 전통 한옥의 성격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용했다. 서울의 높은 땅값을 고려해 협소한 대지 위에 올려질 수밖에 없었던 L한옥은 대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로 설계해 주거 공간을 넓혔다. 또한 배관, 덕트 등 현대 설비를 통해 한옥의 단점으로 꼽히는 단열과 누수문제를 해결했다. 사각지대에 배치한 배관은 미관을 해치지 않으려는 한옥에 대한 그의 배려다.    

ㄱ자형 전통한옥 구조를 현대 주거 양식에 맞게 풀어낸 L자 구조의 신(新)한옥. 독립된 채를 지붕으로 연결해 이동이 편리하다. 한옥의 미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 배관은 처마 아래에, 실외기는 건물과 담벼락 사이에 설치했다.
실내에는 매립형 조명을 설치해 대들보와 서까래의 중후한 멋을 강조했다.

소통 단절‧우울증 겪는 현대인들에게 ‘생활한옥’은 최적화된 집

“한옥은 바쁘고 복잡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최적화된 건축이다. 모든 방이 연결된 구조는 가족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게 하며, 사방에 설치된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우울증에 효과적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옥하면 춥고, 좁고, 관리가 힘들다는 선입견이 컸는데, 지금의 한옥은 단열, 차열, 방음 등의 기술력이 현대 건축물과 비교해도 주거 기능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과의 조화, 친환경 재료의 사용, 공기의 원활한 순환, 냉난방에 효율적인 구조 등 ‘생활한옥’이란 이름으로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도 적합한 집이 됐다.

김 대표는 “최근에는 하드웨어는 한옥 구조를 그대로 사용하고 소프트웨어는 건축주의 취향에 맞게 모던, 미니멀리즘, 맥시멀리즘 등 다양한 컨셉트로 꾸미는 것이 트렌드”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현대 생활한옥의 큰 특징 중 하나로 ‘공간의 유연성’을 꼽았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현대인들의 삶을 한옥에 담으려면 한 가지 이상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유연한 공간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옥의 대청에서 가족들이 모여 요리와 식사를 할 수 있고, 작은 상을 두어 손님을 맞이할 수도 있다. 또한 중정형의 마당은 겨울철 김장하기에 적합하며, 장독을 보관하는 데 유용하죠.” 

이어 김 대표는 “아파트는 20년마다 재건축이 필요해 지속가능성이 떨어지지만, 2000년 역사를 지닌 한옥은 잘만 관리하면 200년까지 유지할 수 있다”며 한옥의 지속가능성을 강조했다. 

현실에 맞는 건축법 개정, 품질 시공...한옥 활성화 위해 풀어야 할 숙제
최근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성수동, 익선동, 을지로, 세운상가 등은 도시재생을 통해 변신을 시도한 동네다. 도시재생은 산업구조의 변화, 신도시 위주의 도시 확장으로 인해 낙후된 도시를 새롭게 살리려는 정부 사업이다. 죽은 도시를 살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도시재생, 그 중심에 한옥이 있다. 

김 대표는 “과거에는 특정 향유층만 한옥을 즐겼는데,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한옥을 즐기며 한옥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2000년대 초반부터 서울시를 중심으로 지방자치단체가 ‘한옥 활성화 정책’을 시작했다. 옛 한양의 중심부였던 북촌과 그 일대 원서동, 계동, 인사동의 한옥이 게스트하우스, 상업공간, 미술관, 복합문화공간 등 다양한 형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멀게만 느껴졌던 한옥이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오면서 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지가 됐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동네로 탈바꿈 됐다.

북촌 가회동은 서울시 도시재생활성화지역으로 선정됐다. 한옥의 정주환경과 문화적 가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중심시가지형’으로 지정된 것. 서울시는 가회동을 포함해 효창공원 일대 등 총 6개 지역을 2020년부터 5년 간 사업비 1200억 원과 다양한 협력사업을 포함해 3277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한옥 건축가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한옥의 대중화도 중요하지만 한옥이 갖는 건축적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된다”면서 “시공사들끼리 가격 경쟁을 하며 품질이 낮은 한옥을 짓는 흐름은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그는 “한옥은 건축법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있었던 우리의 전통 가옥인데, 지금의 건축 및 건축행정법은 현대 건축물에 맞춰져 있어 한옥의 실정과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며 “단열, 높이 등의 기준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현실에 맞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옥의 대중화를 위해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 김장권 대표. 그는 현재도 서울 건축위원회와 은평구청 한옥분야 건축위원회 위원직을 임하며 한옥의 가치 실현과 보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Project History 

#빈틈없는 수납공간이 돋보이는 가회동 ‘일우재’
기존의 무단 증축된 한옥을 다시 리모델링한 재생한옥. 다락, 하부 수납장, 머리 벽장, 담장 매립형 보일러실 등 곳곳에 수납공간을 만들어 생활의 편리함을 더했다. 경사지를 활용한 높은 마당은 목재 데크로 마감해 아이들이 거실처럼 뛰어 놀 수 있게 했다. 

 

#서울시 최초 2층 한옥 ‘관훈재’
서울시에 등록된 최초의 2층 한옥. 고려시대부터 상업용이나 문루로 활용된 2층 한옥은 한국전쟁으로 대부분 소실됐으며 2층까지 난방이 불가능하다는 단점 때문에 신축도 되지 않았다. 관훈재는 100년 넘게 한국 건축 역사에서 사라졌던 2층 한옥을 부활시킨 셈이다. 단열 효과를 위해 대부분의 벽면을 통창으로 설치해 햇빛이 내부까지 깊숙이 들어오도록 했다. 현재는 전통 공예품을 전시‧판매하는 공방과 전통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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