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_View전통 목공예를 찾아 모으고 가꾸는 사람

좋은 전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더군다나 그것이 한 국가 혹은 민족의 변천사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문화유산이라면, 시간과 공간, 동서양을 초월하는 작가의 감성이 묻어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볼만한 전시를 기획하기까지는 많은 손길이 필요하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관람객을 위해 전시기획을 하고 작품수집, 관리를 담당하는 이들이 바로 학예사 혹은 큐레이터(curator)이다. 짧은 시간에 그 나라를 이해하려면 박물관에 가봐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문화재를 통해 한 국가의 변천과 수준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국의 박물관 및 미술관, 일반화랑에 종사하는 학예사(큐레이터)는 모두 약 1,000여명으로 추정된다. 학예사는 박물관, 미술관의 전시운영과 혹은 학예연구실에 소속되어 근무하거나 대학부설박물관 등에서 근무한다. 또 일반 사설 화랑에서 미술작품기획 및 전시를 담당한다. 전국의 국립박물관에 있는 학예연구원은 약 100여명이고 사립 박물관을 포함하는 모든 박물관에 종사하는 학예사는 약 600명 이상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목재류와 밀접한 장, 농, 반닫이 등의 목공예품을 주로 관리하는 "국립민속박물관"의 목공예품 담당 김희수 학예사를 만나보았다.

 

전통가구와의 인연
Image_View김희수 학예사는 목가구와의 인연이 짧지 않다. 그의 부친이 가구사업을 할 때부터 늘 봐왔던 일이다. 그의 부친 김관중 씨는 "예랑"이라고 하는 목가구공장을 운영하며 한때는 서울 논현동의 대형 전시장을 사용하기도 했었다. 그는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낸 후 84년도 대학을 들어갈 때도 홍익대학교의 목공예과를 들어갔다.
그렇게 이어지던 인연이 지금의 학예연구사 자리에까지 왔다.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상징,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 경복궁의 국립민속박물관의 목공예 담당이 그의 현재위치다. 그는 또한 현재도 몇 개의 강의를 하기도 하고 대학원의 박사과정을 밝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아무튼 현재의 그의 위치는 우리의 전통목가구와 목공예품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가 아닐 수 없다.


전국 두메를 뒤져 목공예품을 찾고 보존하는 일
Image_View김희수 학예사는 출장이 잦다. 그는 전국의 각지의 목공예품을 찾아내고 일반인들이 보존하고 있는 가치있는 목가구와 집기들을 잘 보전할 수 있도록 계도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일을 한다. 물론 박물관에서는 본연의 임무중의 하나인 관람객을 위한 업무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전국의 여러 곳을 다니다보면 참 귀한물건을 만나는 경우도 있는데 때로는 5대를 물려쓴 물건이 보존상태가 좋은 것을 보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문 일입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누구보다도 두메산골의 낡은 전통목가구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올해 연말까지 작업중인 전국의 산재해 있는 목공예품의 자료를 수집하고 안내책자를 만드는 일에 열심이다. 자료집에는 사진과 유물을 사용하던 지방의 생활환경, 도면, 목공예품의 제작기법, 각각의 용도와 설명들이 포함되는 중요한 자료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발품을 팔며 돌아다니면서 아쉬울 때가 더 많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존을 잘 못하고 있거나 그 가치를 잘 모르고 있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또한 그의 임무가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그 가치를 설명하고 지금 쓰이고 있는 그 자리에서 보다 잘 보존하며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기에 그런 분들을 만나면 계도하는데 온 노력을 다한다.


끊어진 목공예문화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Image_View그는 우리민족의 목공예문화를 찾아다니며 전국의 목공예유물들의 전통과 계보를 찾아다닌다. 그러나 그는 단전된 역사에 대해 아쉬움이 많다.
그는 그 시기에 대해 "가장 없는 시기가 1900년 개화 직후부터 1950년대의 전쟁시기까지입니다. 이때의 목공예 문화가 두드러진 특징도 없거니와 당시의 문화에 대한 평가도 없는 것이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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