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_View옻칠에 혼을 담는 옻칠장

멋과 맛의 고장 전주에서 무형문화제 옻칠장인 이의식선생을 만났다. 그의 이력에는 부족해 보이는 작업장에서 나무를 깍고 다듬어 정성을 다해 옻을 입히는 선생의 작은 소망은 개인전을 여시는 거라 한다.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알리기 위해서라는 선생이 장인이다 싶다.

 

 


옻칠과 나무와의 인연

Image_View14살 때 주위의 권유로 처음 나무와 옻칠과 인연을 맺은 이의식선생은 72년 최한창 선생의 문하생으로 서울모란칠예공방 옻칠연구문하생으로 들어가 본격적인 옻칠공예의 길에 접어들었다. 78년에는 지금의 토대가 된 행촌칠예공방을 설립 본격적인 옻칠연구를 시작하였다. 1985~1990년 일본의 건너가 옻칠 공부를 위해 동경 도모다칠예학원을 수료하였다. 한국과 일본의 옻칠을 모두 공부한 그는 그때부터 자신만의 작업세계에 몰두하였다.
이는 곧 많은 수상으로 이어졌다. 79년 동아일보 동아 공예대전 입선을 시작으로 그는 거의 매년 각종 공예품 대회에서 거의 매년 수상하다 시피 했다. 92년 일본국제디자인전 은상 수상을 계기로 국제 무대에도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98년에는 무형문화재 옻칠장이 되었고 1999년 대한민국 신지식인으로도 선정되었다.

독특한 작품세계
Image_View그의 작품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가 작품에 쏟는 정성만으로도 능히 그의 작품의 우수성을 알 수 있다. 그는 나무는 아주 좋은 자연 재료이지만 다루기 쉬운 재료는 아니라고 말한다.
나무를 조각 가공한 상태를 백골이라하는데 이를 곱게 사포질하여 삼베를 제품에 입힌다. 이는 제품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삼베를 입힌 제품에 고래라는 작업을 통해 옻과 토분을 입히고 면갈기를 통해 면을 깔끔하게 처리하여 옻칠작업을 한다. 옻칠은 보통 15회정도를 한다.
완성 기간은 작품에 따라 다르지만 3개월에서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매난국죽 주전자, 운항문 호족반, 당천문양항아리,삼층장, 문갑이 모두 그런 복잡한 과정의의 정성에서 만들어졌다. 정성과 애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팔려 나갈때가 마음이 아프다는 그의 부인의 말이 가슴을 스쳤다.
그의 작품은 일본에서도 인정받아 일본에 수출한다고 한다. Image_View12지신상과 과반등 소품류를 주로 하여 우리나라의 옻칠장의 기술을 빛내고 있다.


 


 

 

옻칠장 전수자는
Image_View지금도 문하생이 6명이 있지만 한참 젊을 때 옻칠을 배운다는 것이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고 선생은 말한다. 몇 개월을 못 버티고 배움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딸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싶었는데 딸은 대학에서 공무원을 준비중이어서 거부했다고 한다. 어느날 딸이 그에게 기술을 전수 받고 싶다고 했을 때 가장 기뻤다고 말한다. 딸이 눈썰미가 좋아 배우는 속도가 빨라 또 다른 기쁨을 누린다며 환하게 웃는 장인과 그 부인의 미소가 정말 좋았다.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불쑥 선생의 딸이 들어 왔다. 맑은 웃음을 띄고 하얀 옷에는 군데군데 옻이 묻어 있었다. 맑은 가을하늘과 친구가 더 좋을 나이인 듯 싶은데 아무래도 옻칠이 더 좋은 모양이다. 무척 밝아 보였다. 옻 묻은 부녀가 보기 좋았다. 기자는 미래의 여성 무형문화제 옻칠장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의식선생은 장인으로서도 한 가장으로서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경력 및 연구활동
1972. 서울모란칠예공방 옻칠연구
1978. 행촌칠예공방설립
1980~1990 일본동경 도모다 칠예 학원수료
1990. 우수공예인지정 제 90-2호
1991. 전라북도 전통공예인협회 초대 회장
1991~1995 대한민국 옻칠공에전 심사
1993~1996 나전칠기 기능경기 대회 심사위원
1994. 한중 칠예 교류전
1994. 세계 칠예가회 회원
1998. 무형문화재 제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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