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_View전통 이미지 복원한 문화상품 "전통퍼즐"
전통 목공예가 장경춘

1959년, 6·25동란의 기억이 채 가시지도 않았을 무렵 서울 광희중학교를 졸업한 장씨는 평생을 사대문 안에서 살아 온 서울 토박이다. 그리고 그의 일생을 함께 한 또 하나의 친구가 바로 나무다.
전쟁 직후의 어려운 상황에서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그는 곧 삶이란 전쟁을 위해 대문을 나서야 했고, 17세가 되던 그 해부터 지금껏 목공예의 길을 걸어 왔다.

 

오로지 백골 제작만
Image_View군복무 후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제 10호 나전칠기장 고 김태희 선생 공방의 소목부에 입사해 소목 기능을 전수 받은 지도 어느 새 40여년이 지났고, 이제 그가 김 선생을 대신해 전통에 관심을 두고 있는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올해 예순 셋인 장씨의 주특기는 백골. 백골은 아무런 채색도 하지 않은 나무의 골격을 말하는 것으로 옻칠기·나전칠기의 소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장씨의 공방에서는 완성품을 볼 수가 없다. 제작중에 있는 문갑이나 화초장은 백골상태에서 다음단계를 완성시켜줄 장인들의 손을 거치기 위해 옮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골상태의 작품에서도 장씨의 정성어린 숨결이 고풍스런 멋으로 살아난다.


명장들의 손길이 모여 탄생
Image_View못을 일절 사용하지 않아도 견고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그의 작품에는 전통 짜맞춤기법이 적용된다. 작품을 위한 설계도는 이미 머리 속에서 그려진다. 길이와 두께는 그의 두 손에서 자로 잰 듯 정확한 수치대로 재단되고 다듬어진다.
완성된 백골상태의 작품은 옻칠을 위해 그 분야의 장인에게 옮겨져 전통의 색으로 갈아입고, 화초장을 위해서는 한상수씨(68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의 손을 빌어 탄생한 자수를 이용해 비로소 완성된 하나의 전통가구로 탄생된다. 하나의 전통가구를 위해 이렇게 여러 장인들의 손을 거쳐야 하니, 가격이 비싸다고 상품을 무시하는 소비자들이 무심할 뿐이라고 한다.


전통은 무조건 비싸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전통문화상품이라면 장인의 정성어린 손길을 거쳐 제작된 고가의 상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윤에만 맞춰 기술과 전통을 무시한 기성품들이 대부분이기에 일반인이 제대로 된 문화상품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지요."
그뿐 아니라 전통을 이어가는 모든 장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진정한 우리 맥을 이어서 정성을 기리다 보면, 상감문갑 하나 만드는데도 두 세달은 족히 걸린다. 그리고 하나의 작품에 들어가는 장인의 손길도 목물 따로, 칠 따로, 상감 따로……. 이렇게 과정이 복잡한 만큼 작품의 값어치도 올라가게 되고, 결국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극히 일부 소비자에게 국한되고 대부분은 국내 전시장 또는 해외의 명품시장으로 팔려지게 되니,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문화상품들과는 맥락을 달리 할 수밖에 없다.


대중과 함께하는 문화상품
Image_View그의 야심작, "공포작 큐빅"은 지난 99년 서울문화상품전의 대상을 수상하면서 세상에 선보여졌다. 전통공예미술아카데미 관장직으로 있으면서 우리의 고건축 공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공포를 이용해 한국전통퍼즐로 재현해낸 것이다.
절이나 고궁의 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포는 못을 쓰지 않은 채 기둥머리를 중심으로 나무와 나무를 서로 잇대거나 끼어 맞추는 건축공법이다. 이처럼 고건축물에서나 볼 수 있는 거대한 공포를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도록 소형화를 시도한 것이다.
특히 우리의 고건축 공법을 대표하는 이 공포를 10㎝ 안팎으로 축소하고 한발 더 나아가 일반인도 공포를 짜맞추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실제와 똑같이 6개의 나무조각으로 분해해놓은 것이다. 그래서 "한국전통퍼즐"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마치 서양식 레고나 블록처럼 한 번 손대면 금방 재미를 느끼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이미 특허를 받아낸 "공포작 큐빅"은 경기도 여주에 공장을 마련해 양산중인데, 현재 하루 400개는 족히 생산할 수 있다. 이 상품의 재질은 괴목(느티나무), 홍송, 흑단, 비자나무 등 4가지 종류

저작권자 © 한국목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