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_View조선시대 서민 생활용품 '한지 공예'
한지공예가 금광복

공예에 조예가 깊은 집안에서 자란 그는 어머니와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린시절부터 동네에서 손재주가 있다는 평을 들었던 형제는 이후 함께 공예가의 길을 걸었다.
한지로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한지로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쉽게 손상될 것 같은 한지는 몇번의 과정을 거쳐 견고함을 지니게 된다. 한지는 조선시대 반짇고리, 바구니는 물론 요강까지 만들어 쓸 수 있었다는데…….
한지조각가 금광복의 작업실에서 한지의 수없는 변신을 지켜봤다.

 

공예가 집안의 핏줄
Image_View'한지로 못 만들 것은 세상에 없다' 고 자신있게 말하는 한지공예가 금광복의 작업실에는 도저히 한지로 만들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다양한 생활용품들로 가득 차 있다.
어린시절부터 무언가 만드는 것이 좋아 누구에게 배우지 않고도 한지공예를 익혔다는 그.
그가 공예활동을 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그의 형이다. 형 역시 손재주가 좋아 어린시절 도장 파는 곳이 없던 시골에서 어린 형은 도장을 곧잘 파서 어른들을 드리곤 했다는데…….
그의 어머니 역시 손재주가 남달랐는데 80년대 할아버지,할머니 공예자랑에서 부채를 만들어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형을 정신적 지주라고 말하는 그는 한지와의 인연을 형에게서 찾는다. 형의 부채 제작을 도와주면서 자연스럽게 한지를 접하게 된 그는 결국 한지공예가란 특수한 직업을 갖게 됐다.

 


한지로 혼례용품 만들던 조선시대

Image_View한지로 만들어진 반짇고리, 소반, 고비, 연, 탈, 부채 등 한지로 못 만들 것이 없다는 그의 말처럼 한지의 쓰임새는 다양했다.
옛날 서민들에게 한지는 생활용품을 만들던 친숙한 재료라고 한다. 딸을 시집보낼 때 변변한 혼수품조차 마련해주기 어려웠던 시절 어머님들은 한지를 물에 불려 종이죽으로 만든 뒤 그것으로 혼례용품을 만들었다. 여기에 박지를 오려붙이고 모란꽃을 붙이면 비로소 딸을 시집 보낼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종이는 물에 약하다는 상식도 깨어진다. 요강을 종이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는데 요강에 옻칠을 하면 물에 쉽사리 녹지 않고 견고해진다고. 닥나무로 해녀복까지 만들었다니 종이가 물에 약하다는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야겠다.
뿐만 아니다. 고구려 장군들의 갑옷도 종이로 만들었단다. 겹겹이 스무겹의 종이를 붙여 만든 갑옷은 화살도 뚫기 어려웠다고.



중국,일본 공예품 모방 아쉬워

Image_View개인전만 3차례 가진 바 있는 그는 88년 첫 전시회를 열면서 기쁨보다는 아쉬움이 앞섰다.
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 일본에서 한국전통공예 10인전에 참가했는데 국내에서 행사가 열리는 것을 기념해 외국에서 전시회를 연다는 것이 무엇보다 아쉬웠다.
그는 우리나라 공예가 중국이나 일본의 것을 모방하는 것도 못내 아쉽다. 이렇게 모방된 작품들이 버젓이 공예대전에 출품돼 수상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그는 한지공예를 독학하면서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한지로 만든 유물이나 작품이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보러 다녔다. 한지연구뿐만 아니라 거기에 사용된 고유문양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한지공예분야에 있어 국내 저명인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7년의 기다림 끝에 탈고한 '한지문양'

Image_View한지에 대한 문양과 생활용품을 연구해온 그는 지난해 12월24일 집필을 시작한 지 7년만에 '한지문양'을 출간했다.
책이 나오던 날 조촐한 기념행사를 갖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책 나왔다' 라는 말을 떼는 순간 화장실로 달려가 울음을 토해냈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열정만으로 한지공예를 계속해온 그는 늘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이렇다할 지침서조차 없는 한지공예와 문양분야를 후학들이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책 출간을 결심했다는 그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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