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_View꿈에 부처 만난 조선 불교조각 계승자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목조각장 허길양

허길양 목조각장은 불교조각장이라는 칭호가 더 걸맞는 인물이다.
우연한 기회에 불교조각을 시작해 꿈에서 만난 부처를 그대로 조각으로 재현하면서 그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불교조각의 계보를 잇고 있는 그는 오는 3월20일 첫 개인전을 앞두고 지난해 12월21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허길양 목조각장의 34년 조각 인생을 들어보자.

 

공예품 조각으로 34년 조각인생 첫발
Image_View그의 나이 열다섯 되던 해, 을지로의 한 공방에서 목형과 건축조각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조각과 인연을 맺게 됐다.
한 4∼5년 남짓 조각을 익히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찾아와 종 제작을 주문했었다. 그의 재주를 알아차린 주문자는 그에게 섬세한 불교미술을 권하며 현재 익산문화원 원장으로 재직 중인 불교 미술의 대가 이인호 선생을 소개했고 그런 계기로 제자가 되어 탱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것이 불교미술과 허길양의 첫 만남이었다.


진정한 스승, 우일스님
그는 국내에 유일한 조선시대 불교조각의 계보를 잇는 인물이다. 그가 조선시대 불교를 이해하고 그 조각기법을 배우는데는 77년 인연을 맺은 우일스님으로 인해서다.
현재까지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진정한 스승으로 우일스님을 꼽는 그.
우일스님은 금호스님→보응스님→일섭스님으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불교미술을 계승한 인물로 단청, 탱화, 조각에 모두 능해 ‘금어(金魚)’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금어는 모든 불교 미술분야에 능한 인물을 일컫는 말이다.
“중요무형문화재에 지정됐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분이 우일스님이었습니다. 98년 열반하신 우일스님을 대신해 사모님에게 가장 먼저 기쁜 소식을 알렸습니다. 스승이 못다 이룬 일을 제자가 이뤘다고 스님이 하늘에서 기뻐하실 거라며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꿈속에서 만난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Image_View그는 77년 불교미술계의 등용문인 불교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 때 출품한 작품이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이었는데 작품을 제작하면서 아주 신기한 경험을 했다는데.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이 눈 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겁니다. 42개의 손에 각각 들려진 물건들이 있었는데 꿈을 깨고 나서도 잊혀지지 않는 이미지를 조각으로 표현했지요. 혼을 다해 작품을 제작했고 결국 큰 상을 받게 됐습니다. 이후 작품은 와우정사로 옮겨졌으나 화재로 인해 타버렸습니다. 변변한 사진 한 장 없이 말이죠.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은 이전까지 조각으로 표현된 바가 없는 작품이었다. 그가 꿈속의 계시를 통해 세상에 보여준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은 이후 많은 조각가에 의해 재현됐고 그는‘천수천안 관세음보살’로 불교조각계에 주목받는 인물이 됐다.


잿더미 속에서 살아난 불상
첫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을 제작하고 나서 얼마되지 않아 같은 작품에 대한 주문이 들어왔다.
또 다른‘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이 거의 완성될 무렵이었다. 외출을 하고 돌아왔는데 어려운 가운데 겨우 마련한 작업실에 불이나 활활 타고 있었다. 순간 눈물이 흘러내리고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멍하니 주저앉아 두번째 타고 있는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있던 그때였다. 제자 하나가 “선생님, 여기 이 작품은 멀쩡합니다. 불 속에서 타지 않았어요”라는 것이 아닌가.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두번째‘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은 엄청난 불길에서 살아남아 있었다.
인천 송도 흥륜사에 모셔진 이 불상이 잿더미 속에서 살아남으면서 그의 불심은 더욱 깊어만 갔다.


불제자와 시선 맞추는 자비로운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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