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인이면서 탈목재를 꿈꾸는 사람, 아니 정확히 말해서 목재와 목재가 아닌 산업과의 조화를 모색하는 사람이 있다.
포장재 전문 생산업체 범진산업(주)의 권중덕 사장은 한마디로 괴짜다. 오랫동안 목재일을 해온 이들은 대부분 다른 분야를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지만 그는 3년동안 컴퓨터와 인터넷과 씨름해 그럴듯한 홈페이지들을 만들었고 회사 내에 정보통신 관련부서를 만들었다. 전통산업 중에서도 굴뚝산업의 대표격인 목재계에서 나온 발상이라는 것이 의아할 정도다.
74년 광명목재 입사 이후 시작된 그의 목재산업 경험담과 새로운 시도에 대해 들어보았다.

 

Image_View부지런함은 경영자의 기본
인터뷰를 위해 범진산업에 전화를 걸었을 때의 일이다. "몇시에 만나 뵐까요?"라고 묻자 대뜸 오전 6시도 좋고 7시도 좋단다. 도대체 몇시에 출근을 하길래 이런 억지를 부릴까 싶었다. 권중덕 사장의 출근시간은 보통 6시다. 남들이 잠에서 깨는 시간에 그는 먼저 하루를 시작한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출근이 이른편이었지만 경영자가 되면서 남보다 이른 출근시간은 더 철저히 지켜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직원들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단지 내가 좋아서 일찍오면 그뿐.


목재와 비목재의 결합 "퓨전"
첫직장은 광명목재였다. 입사한 해가 74년이니 올해로 꼭 목재쪽에 입문한 지 30년이다. 78년 광명목재가 이건산업을 인수할 당시에는 인수팀에 근무했고 79년부터는 해외로 출근도장을 찍었다. 파푸아뉴기니의 원주민들과 어울려 산림조사를 다니던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현재 그는 파렛트를 비롯한 포장재를 생산하고 있다. 포장재와 그의 인연도 결코 짧지 않다. 이건에서 그린팔레트의 개발에 참여한 이후 퇴사해 오파업무를 하다가 94년 본격적인 파렛트 생산에 들어갔다. 처음엔 목재파렛트만 취급했지만 지금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목재와 철재가 혼합된 파렛트와 우레탄, 플라스틱 등도 취급한다. 그는 늘 "퓨전"이라는 말을 강조한다. 목재와 비목재 자재의 결합이 바로 그 사례일 것이라는 설명도 잊지 않는다.


외국인노동자의 아버지
"범진을 일으켜 세운 장본인은 내가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들입니다."초창기인 94년 부천에서 제재설비까지 갖추고 파렛트를 생산할 때의 일이다. 제재와 파렛트 생산 모두 힘든 일이었기에 한국인 노동자들은 며칠 못가 회사를 그만두었고 우연히 불법체류자인 파키스탄인 2명이 찾아와 함께 일을 하게 됐다. 그 뒤 트럭기사를 한명 채용했는데 이 트럭기사가 외국인들에게 욕설을 가르쳤다.
그러던 중 어느날 트럭기사가 외국인들을 마구 구타하는 것을 보게 됐다. 이유는 트럭기사에게 외국인들이 뜻도 모르고 욕설을 한 것이었다. 결국 권사장은 외국인에게 폭력을 휘두른 트럭기사를 해고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인연이 돼 당시 외국인노동자들의 친구들까지 범진의 일을 돕곤 했다. 또 팔을 다친 외국인이 찾아오면 치료를 해주었고 명절이면 이슬람사원까지 직접 차를 태워 데려다 주곤 했다. 그중 한명이 당시에는 고가였던 호출기를 월급의 반을 털어 선물했을 땐 정말 가슴이 뭉클했다고 권사장은 회고한다.
또 한번은 한국인 브로커의 꾀임에 빠져 범진에서 일하다 일본으로 밀항을 시도한 외국인 한명이 광주구치소에 잡혔다. 부랴부랴 광주까지 내려갔는데 다른 회사 사장들도 있었다. 다른 회사 사장들은 외국인들을 고용한 적이 없다고 우겼지만 그는 벌금을 물면서까지 내가 데리고 있던 사람이라고 당당히 밝혔다. 그때 강제출국을 당한 이는 아직도 전화를 걸어"아버지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요"라며 고마움을 표한다고.


새로운 시도는 항상 내몫
파렛트를 생산하면서 외국에서 수입되는 제품과 함께 들어오는 파렛트의 재활용을 생각하게 된 그는 직접 중고 파렛트 해체기를 개발하고 수원 삼성공장에 들어온 일본의 마쓰시타, 소니, 히타치 등 전자제품이 수입된 후 남겨진 파렛트를 가져다 재활용을 하게 됐다.
이를 본 일본의 스미모토상사는 일본에서 버리는 파렛트를 다시 재활용해 일본으로 역수출하려는 권 사장의 발상을 높이 사 직접 범진 공장까지 방문하기도 했다. 또 이런 발상이 스미모토 직원들에게 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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