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목재산업계와 임업연구원을 논하는데 있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국내에 해방이후 최초의 목재산업이 뿌리를 내리던 그 현장에서부터 목재합판이 수출 제 1종목을 과시하던 때에도 항상 그 한 가운데 서있던 사람이 바로 조재명원장이다.
조재명 전 임업연구원장은 지금은 현직에서 물러나 있지만 그가 남긴 큰 발자취는 우리나라 임산업과 목재업의 근원이 시작된 그 어느 곳에도 항상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몇몇 주변사람들의 부탁으로 몇 개 단체의 의 원장직을 맡고있다. 아직도 현직 밖에서 목재산업계의 발전을 위해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조재명 전 임업연구원장을 만나 지나간 반세기의 우리나라 목재산업계의 예기를 들어보았다.

 

Image_View전쟁의 잔재속에서 시작된 임학과의 인연
조재명원장은 휴전협정이 한참이던 52년도에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서울대 농대의 농경제학과를 지원했었으나 전쟁중에 상경한 지원자들을 선착순으로 정원을 채우고 상경해보니 본인은 임학과로 배정이 된 후였다.
일본에서 정식으로 임산가공을 배우고 미국에서 4년간 유학을 하고 돌아온 심종섭박사로부터 처음으로 산림이용학이라는 과목이 개설되고 이를 처음으로 학문으로 접하게된 학생들이 바로 조원장의 학번인 것이다.
당시에는 전쟁이 종전되기도 전인지라 먹물을 갈아서 유리펜으로 한지에 원서를 받아쓰며 대학생활을 했었다고 회고한다.
그가 졸업할 당시 농대수목원 주변에 처음으로 "임산이용교실"이 만들어 졌다. 대학 실험실에 처음으로 현미경과 목재해부를 위한 마이크로톰 등이 들여져왔고 교수들의 조언에 따라 2년간 농대의 조교직을 맡게 됐었다.


처음으로 접한 목재산업 조선목재주식회사
조원장은 지금도 당시 전후 복구사업을 맡기위해 국내에 들어와 있던 "위이크스"씨를 훌륭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다.
당시에는 전후복구 시설중에도 전기와 철도가 심각한 때 였는데 이를 위해 세계각지에서 침목과 전주용 목재가 국내로 들여져오고 있을 때였다.
해외에서는 이를 방부가공해서 보내주고자 했으나 "위이크스"는 한국에는 복구사업뿐 아니라 산업의 발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신념으로 일제시대의 시설물을 보수하여 대한민국 최초 방부업체인"조선목재주식회사"를 만든다.
그러나 해외로부터 들여오는 수많은 수종과 목질을 분류하고 방부수준을 결정할 수 있는 인력이 없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서울대 임학과에 도움이 요청됐고 심종섭박사는 조교직은 그대로 유지할 터이니 몇 개월만 부산에 내려가 조선목재를 도와주라는 특명을 내린 것이다. 58년도에 그렇게 맺은 조선목재와의 인연은 4년이나 흘렀고 조선목재 또한 그땐 이미 체계와 자리가 잡히게 되었다.
당시 사장이 그를 잡아두기 위해 소원이 뭐냐고 물었다. 그가 기업연구소를 만드고 싶다고 하니 선뜻 300만원을 주었다고 한다(당시 일반인 한달 급여가 약1,000원 정도).


임업시험장과의 인연
지금의 임업연구원은 임업시험장이란 이름을 87년도부터 개칭하면서부터이고 그 이전에는 계속 임업시험장이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 농림부 산림국장을 겸임중이던 심교수는 임업시험장의 기능강화를 위해 사람을 물색하다가 다시 그를 천거해 임업시험장과의 인연을 맺게됐다.
그가 갔을 당시 총직원이 24명이었고 이용과에는 3명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시험장은 지금에 와서 340여명의 규모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 늘 조재명 전원장이 함께 있었다.
당시 국내산업은 성창이 합판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때이고 주왕산업이 57년도 목재건조기를 처음 도입했으며, 조선목재가 방부처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모든 목재가공산업 분야가 걸음마를 하고 있던 것이다.
"웅크라원조"와 같은 해외원조도 받고해서 시험장에도 시험기기가 조금씩 생기게 되었다. 처음으로 강도시험기와 각종장비가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60년대 초반 합판회사들이 수출을 조금씩 하고 있을때였다. 청와대에서 수석들의 모임에 불려갔는데 국내 합판삽업의 수출가능성이 어떠냐는 것이였다. 그 자리에서 그는 "우리는 원자재도 기술력도 없지만 해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고 한다.
그 후 정부에서 업계 지원을 위해 임업시험장에 외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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