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혈기왕성하던 30대초반을 열대림 개발을 위해 정글에서 원주민과 보내고 국내외에 조림업무를 담당하며 어느덧 40년의 세월을 목재와 함께 보냈다.
국내 목재산업의 역사를 고스란히 체험한 부이택의 허남주 대표는 이제 건조기와 방부주약관의 국내 공급에 앞장서고 있다.
가공기술에 비해 건조와 방부기술이 취약한 국내 실정이 안타까웠다는 그에게 국내 목재산업의 과거와 앞으로 그가 준비하는 건조 · 방부산업에 대한 미래를 들어보았다.

 

Image_View서울 농대 임학과 59학번
참으로 까마득한 나이다. 59년에 대학에서 임학을 전공하고 한번도 목재 이외의 일을 생각해 보지 않았던 허남주 대표가 이제 40년동안 몸소 겪어온 목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임학을 전공하고 대학을 졸업한 해가 65년이다. 졸업한 그해에는 UN산림조사기구에서 근무했고 그 이듬해 성창합판에 입사했다.
성창에서 그는 안동, 단양 등지에 지금 한창 벌채되고 있는 낙엽송을 조림했다. 그때 조림했던 나무들이 이제 수령이 30년생 이상 돼 목재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니 그의 뿌듯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3년간의 정글생활
코린도의 전신인 인니동화에서 그는 3년간 열대림 개발을 위해 정글에서 살다시피 했다.
원주민들과 방언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을 정도로 그곳 생활에 잘 적응했던 그는 88년 경험을 토대로 "원색세계목재도감"을 펴낸다.
당시에는 나왕이 어떤 수종인지도 무지했고 국내에서 사용되는 명칭과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목재의 명칭이 서로 달라 이를 밝혀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였다.
3년간의 정글생활로 그는 "메란티"가 나왕이라는 살아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정글과 허 사장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인니동화에서 현대건설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PNG산림개발이었다. 게릴라성 폭우와 맹독성 파충류의 위협이 있는 정글은 그에겐 소중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일터였던 셈이다.


사원에서 경영인으로
알고 보면 그만큼 목재와 인연이 질긴 사람도 드물다. 목재를 전공하고 목재회사에서 근무해온 그의 처가집 역시 수원에서 제재소를 경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처가의 일을 돕기 위해 현대건설을 퇴직하게 되고 그의 독립을 향한 발걸음은 시작된다.
처음 현대건설을 퇴사할 무렵에는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고 정주영 회장의 간곡한 만류가 있었지만 그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처가에서 운영하던 수원 대성목재는 제재소 겸 수입업무를 병행하던 곳이었다. 주로 미송을 수입했는데 상사들이 본격적인 원목 수입에 뛰어들기 전까지는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이후 그는 81년 최득수 당시 한국무늬목 사장과 함께 옥산실업을 공동 창업한 후 85년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주해임산을 설립하게 된다. 독립까지 걸린 시간이 30년,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국산재 헐값 거래 아쉬워
주해임산에서는 미송과 북미산특수목, 러시아산, 남미산 목재를 수입판매해 왔다. 그러나 그는 늘 외국산 목재를 취급하면서도 국산재가 제값을 받지 못하고 소외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국산재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그는 여주임산물유통센터에 건조기도 납품했고 임업기계 훈련원에 이동 제재기, 운반기 등 임업기계도 공급했다.
국산재의 소비 확대는 오랜 기간을 투자해야 하는 장기적인 사업이다. 그동안은 외재에 대한 의존은 불가피했다. 외국산 목재를 국내에 맞게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다. 그렇게 탄생된 것이 전 임업연구원장 조재명 박사를 비롯한 학자들과 공저한 원색세계목재도감이다. 이 책을 발행한 출판사에서는 이제까지 발행된 예가 없었던 책이어서 목재산업 관계자들 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인기가 있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베스트셀러였던 셈이다.


건조 · 방부로 목재 품질 높일 터
현대에 근무할 당시 목공기계를 수입했던 경험이 있는 허 사장은 이후 국내 목재산업의 품질경쟁력 재고를 위해 건조기의 도입을 결심한다. 지난해 부이텍을 설립하고 순간진공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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