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8년 6월, 조선 7대 임금 세조가 직접 이곳을 둘러보고 능터를 정한 이후, 경작과 매장은 물론, 조선시대 500여년동안 풀 한 포기 뽑는 것조차 금지되었던 보호지역 광릉숲에 자리잡고 있는 국내 유일의 국립수목원이며, 가장 오래된 국내의 수목원인 광릉의 국립수목원을 찾았다. 아침공기가 시원하게 차창으로 들어오는 국내 숲의 보고(寶庫)에서 수목원장으로 부임한지 4개월이 지난 김남균 국립수목원장을 만났다.

 

Image_View광릉 국립수목원장의 부임 후 느낌은?
대성목재공업주식회사에 첫 발을 디딘 것은 73년도의 일이다. 당시 대성목재는 수출훈장을 받을 정도로 잘되고 있던 시대이고 여기에서 현재의 김낙기사장과도 만났다. 둘은 입사동기이고 룸메이트 였으며, 현재까지 함께하고 있는 30년지기의 친구가 되었다. 이때 만난 많은 사람들이 현재까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목재가공과에서 원목과 특수목에 대한 많은 일들을 하면서 수종에대한 이해와 지식을 많이 쌓았습니다. 이후 문영실업에서 쌓은 무역실무와 이때의 경험이 저의 재산입니다.” 김광채대표는 대성목재와 문영실업에서 익힌 특수목과 오파세일에 관한 노하우를 익혀서 후에 창업을 하는데 기초를 닦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입사와 그 후의 직장생활을 목재산업의 전성기 속에서 보낸 김대표는 그 당시의 하는 일들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들이 많아서 대단히 즐거운 때였다고 회상한다.


국산재의 이용한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늘 풀어야 하는 임업인의 대명제가 아니겠습니까?”
김원장은 쉽게 해결될 수는 없으나 국토의 산림을 이만큼 지니고 있는 상태에서 언젠가는 반드시 풀어야 하는 일이라 했다. “국민들의 기대에 미칠 수 있는 수준의 무언가를 자꾸 해야합니다.”라며, 국산재를 이용한 건축물을 자꾸 만들고 보여줘야하며, 국산재의 육성가능성을 알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 광릉 수목원에도 순수 국산재를 이용한 표본관을 건립하고 있습니다. 장차 국산재 가공기술과 국산재 우수성의 홍보관 역할을 할 것입니다.” 현재 광릉수목원의 목재박물관 뒤쪽으로 세계적 수준의 목재표본관이 만들어지고 있다. 국산 낙엽송과 낙엽송 집성재로 만들어지고 있는 이 표본관에는 총 60만종의 표본을 소장할 예정이다.


최근 목재문화의 개선과 보급의 노력이 많은데...
요즘 시도되고 있는 다각적인 노력들을 보면서 목재문화를 이끌어 가고자 하는 방향이 바로서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김남균원장은 해마다 초등학교생 만1,000여명의 교육을 위한 Green school을 여는 것을 비롯해 숲 해설가 등이 자리잡아가는 것들도 모두 수목원서 할 수 있는 목재문화운동의 일환이라 생각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어린 꿈나무들에게 숲과 목재와 나무의 소중함을 알리고 제재로 교육을 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예전보다 목재산업계가 많이 약해진 것에 대해
“목재업계의 수요가 떨어지고 국산재도 그와 마찬가지가 되는 것은 국내에서 목재를 생산코자하는 산주들에게 의욕이 떨어지는 일이기도 하며, 해외의존도가 높아만가는 것은 생산성도 저하시키므로 지금보다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원장은 또, 산?학?연 등으로 생산자와 산업계에 힘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많이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경우 작은 지역별로 산지와 중소규모의 목재관련업계, 그 지역의 학계들이 서로 많이 연계되어 있는데 그러한 가능성은 국내에도 충분히 잠재되어 있다고 봅니다.”라며 희망적인 전망을 하였다. 또 국내의 산림청 산하의 최근 ‘목재이용과’ 등이 다시 생기는 것에 대해서는 원래 있던 것이 폐지되었던 과거를 돌이키며, 지금의 추세와 정책들이 바른길을 가고 있는 것이라 말하였다.


수목원 재임기간동안 주요계획은?
김남균원장은 앞으로 수목원의 본래의 기능을 충실히 하겠다고 했다. 우선은 첫째, 일반인들에겐 자연학습의 장을 제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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