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가장 실용적이고 아름답게 실생활에 적용하는 방법, 김낙중 교수는 누구보다 이를 잘 아는 사람이다.
"꼭 나무만을 고집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다른 소재와의 어울림, 적재적소에 사용되도록 하는 것이 나무의 미학과 용도를 가장 잘 찾아주는 일이죠"
목조건축기술협회가 건설교통부 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으면서 목조건축물에 대한 인식은 새로이 정의되고 있다.

 

Image_View사우디를 비롯한 세계는 김낙중 교수의 주 활동무대였다. 적어도 그가 학업을 계속하기 전까지는.
현대건설에서 해외설계실에서 근무하고 이후에도 해외에서의 그의 행보는 계속됐다. 각 대학에서 강사로 나섰고 그때까지만해도 그가 다른 일을 할만큼 무모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건설회사에서 퇴직한 후 설계사무소를 창업한 그는 한창 설계사무실이 자리를 잡던 시기인 95년 돌연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운명을 바꾸기 위한 첫 걸음은 그렇게 시작됐다.


마흔셋 늦깍이 대학원생
미국 프렛대학의 건축설계 석사과정에 최고령 늦깍이 대학원생이 된 그는 남들보다 늦었던 만큼 학업에 대한 욕구도 남달랐다.
"교수들도 나보다 어린 사람이 있었죠. 마흔셋이라는 나이는 최고령이었으니까요."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누군가 선생님하고 부르더군요. 건설회사에 근무하던 시절 내 강의를 듣던 학생이 같은 대학원에 진학한 것이었죠. 그날부터 난 그들의 물주가 되었습니다. 한인식당에서 함께 소주를 마실 때면 늘 계산은 제 몫이었죠. 나이 때문에 왕따(?)되기가 십상인데 적응을 잘 한 셈이죠."
그는 그렇게 미국생활의 외로움을 덜 수 있었다고.
늦깍이 대학원생이라는 타이틀 말고도 그에 관한 기록은 다양하다.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최단기간에 수료한 이로도 유명하다. 단 5년이 걸렸다. 또 박사 수료 후 1년만에 건국대 건축대학원교수로 임용됐다.
사실 아무런 지인도 없었던 건국대에서 교수를 초빙한다고 했을 때 그는 반신반의했었다. 나이도 많고 연줄하나 없는데 과연 될까하는 생각이었다.
교수로 임용되면서 그는 우리나라가 많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교수가 되려면 줄을 잘 서야한다는 보이지 않는 공식이 깨져버렸으니 그럴만도 하다.

 

목조건축 현대적 기술 연구
목조건축에 대한 그의 생각은 남다르다. 목조건축을 연구하거나 설계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모든 것을 목재로만 만들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는 목재를 꼭 필요한 곳에만 사용해야한다는 견해를 지녔다.
"한번은 수영장의 설계를 맡았는데 지붕을 목조트러스로 하고 벽체는 콘크리트를 이용했습니다. 수영장처럼 습한 곳에 물이 맞닿을 수 있는 부분에 목재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가 설계한 대표작 중에는 목조는 아니지만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건축물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압구정 씨네플러스다. 시공 전까지 만해도 씨네플러스는 압구정의 중심이 아니었지만 그는 씨네플러스를 압구정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당시만해도 파격적으로 1층에 매표소 이외에 넓은 공간을 확보해 자연히 사람들이 만남의 장소로 사용하도록 배려했고 씨네플러스는 건축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목조건축기술협회의 창립부터 회장을 맡아온 그는 사단법인 인가로 할 일이 더 많아졌다.
한옥, 문화재 중심의 국내 목조건축 문화를 현대적으로 조화롭게 재현하는 일이 그에게는 영원한 숙제이다.
목조주택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대동소이한 일반의 인식을 개선하려면 무엇보다 목조건축에 "조립"이 아닌 "설계"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적용이 필요하다.
목조건축의 현대적 재현을 위한 그의 노력은 졸업작품 심사가 한창인 대학원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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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건축기술협회가 사단법인으로 인가받은것을 기념한 세미나

 

[약력]

-- 73년 홍익대 건축학과 졸업
-- 87년 연세대 산업대학원 건축설계(공학석사)
-- 95년 미국 Pratt 건축대학원 건축설계(건축석사)
-- 99년 서울대 건축학과 대학원 건축설계(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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