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국장 시절, 산림부의 독립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그. 여전히 농림부 산하에 있는 산림청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는 그는 국내에 사방공사를 처음 시행한 인물이다. 격동의 시절, 칡대신 조림을 하면서 겪어야만 했던 우여곡절을 김영준 전 농림부장관을 만나 들어보았다.

 

Image_View올해로 그의 나이는 여든아홉이 됐다.
2세기를 걸쳐 살아온 그의 인생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이젠 그 누구도 얘기해주지 않는 일들을 역사책을 보듯 그를 통해 들을 수 있다는 자체가 신기할 뿐이다.
여든아홉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건강한 그가 임업역사의 산 증인이라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식목일을 제정한 것도, 사방공사를 한 것도, 헐벗은 산에 조림을 시작한 것도 모두 그가 한일이다. 그의 인생은 바로 국내 임업의 역사인 것이다.
그가 임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서울대 농대의 전신인 수원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다. 졸업 후 경성영림서에 취직하면서 파란만장한 임업인생의 시작을 알린다.


'칡을 심어라'
해방이후 초대 조림과장으로 취임한 그는 사방공사를 주장했다. 황폐한 산의 피해를 막기 위해선 사방공사가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예산이 많이 드는 일이라 당시 국내 상황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이승만대통령은 산에 나무대신 칡을 심으라는 엉뚱한 명을 내렸다. 이에 부당함을 밝히고 명령을 거역하자 농림부장관의 호출을 받았다. 대통령이 시키는 일을 왜 안하냐는 장관의 질문에 그는 ?행정이 잘못됐으면 고쳐야하지 않겠느냐?고 대응했다가 다음날로 서울영림서장으로 쫓겨갔다.
휴전이후 산림국장에 임명된 그는 여전히 칡 식재를 반대하고 사방공사를 단행하다가 이승만 대통령의 노여움을 사기에 이르렀다. "그때 죽을 목숨을 지금껏 부지하고 있어요. 내가 말을 듣지 않자 대통령은 날 죽이라고 했답니다. 다행이 원용덕 헌병총사령관의 중재로 목숨은 건졌지요. 난 인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대통령의 양자인 이강석을 만나 나의 소신을 말하고 대통령을 설득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드디어 소신껏 해보라는 명이 떨어진거죠." 그는 7년동안 산림국장을 역임하며 사방공사와 조림을 통해 황폐한 산림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연료림 조성도 어려웠던 시절
당시엔 목숨을 걸고 조림을 시작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쓸데없는 나무를 심어놨다고 오히려 욕을 먹는다는 그. 사실 우리의 산림이 경제적인 효용이 떨어지는 것은 그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당시 온통 헐벗한 산으로 인해 비만 오면 산사태와 홍수로 온 나라가 난리를 겪던 시절이었다. 또한 연료림 조성하기에도 빠듯한 시절이었고, 산을 푸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시기였다. 오죽하면 이승만 대통령은 칡을 심으라고 했겠는가. "우선 보릿고개부터 넘어야 했어요. 또한 워낙 토질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리기다소나무나 낙엽송을 심을 수밖에 없었지. 그때 우리 공무원들 고생 참 많이 했어요."
고집스럽게 소신을 버리지 않았던 그는 66년 농림부차관을 거쳐 67년 농림부장관을 지내게 된다.


경영인으로 다시 태어나다
30년 공직생활을 마무리한 그는 경영자로 다시 태어난다. 경영자로서의 그의 자질은 1940년 임산물유통업체였던 반도물산을 회생시키면서 이미 검증을 받았다. 친구가 경영하던 부실업체 반도기업을 인수해 3년만에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경력이 있는 그가 맡은 기업은 부실 국영기업 흥한화섬이었다. 취임 2년만에 인견사 수출에 성공하고 흑자기업으로 육성해 민간기업으로 전환시켰다. 그렇게 그는 부실기업 살리기의 명수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그는 만성적자였던 한국전력을 1년만에 흑자로 전환시켰으며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이 맡기로 했던 한국중공업의 사장이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산림과 농림통인 그가 경영인으로 성공한 이유는 뭘까?
1980년 당시 동아일보 기사에 인용된 그의 말을 보면 "돈은 빌딩 속에서 버는 것보다 구멍가게에서 버는 것이 더 실속 있습니다. 사업가로서 허세를 안부리고 겸허하게 누구에게나 신뢰성을 심어주는 것이 근본이지요."라고 쓰여있다. 아무래도 경영자의 길이 그에게는 더 어울렸던 것 같다. 하지만 임업역사의 한 획을 그은 그의 노력이 경영철학의 발판이 되었음은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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