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재로 만든 가구야말로 ‘진짜’ 단 하나뿐인 맞춤이죠”. 세월이 담긴 나무를 바라 보며 영감을 얻는 강연훈 실장. 인테리어 일을 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현장을 누비던 한 소년은 이제 고재로 가구를 만들어 공간을 장식한다. 고재목에 담긴 세월을 포착하고 있는 그의 현장을 찾았다. 

 

고재 가구 전문 공방
지하 1층, 문을 열자 마자 보이는 사무실의 풍경과 안쪽에 넓게 뻗어 있는 작업실의 모습은 최근 그가 얼마나 바쁘게 보냈는지를 보여준다. 인터뷰를 위해 테이블을 정리하면서 그는 말했다. “최근 경향하우징페어에 처음 참여했는데, 계속 정신없이 바쁘네요”. 사무실 한쪽을 채우고 있는 고재 슬라이딩 도어와 대형 거울 그리고 작업장 곳곳에 쌓여 있는 수많은 고재목들을 보니 그의 말이 즉각 실감난다. ‘CM Factory’의 ‘CM’은 ‘cabinetmaker(소목장)’의 줄임이다. 공방의 직관적인 이름 만큼, 그곳의 대표인 강연훈 실장도 꾸밈없이 시원시원 했다. 그런 그에게 요새 주로 어떤 가구를 제작하는지 물어봤다. “이케아가 한국에 들어온 것을 기점으로 인테리어 가구를 많이 만듭니다. 요새 많은 가게들이 빈티지 느낌의 노출을 많이 하다 보니까 원목보다는 고재를 활용한 인테리어 세트를 많이 제작하고 있습니다. 경향하우징페어때도 일반 손님보다 인테리어 업체쪽과 많이 연결이 됐습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소프트우드로 시작했는데 곧바로 하드우드로 바꿨고, 3년 전부터는 고재 가구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익힌 현장의 느낌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인테리어 일을 하던 목수였다.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목공 일과 인테리어 현장을 접하게 됐고, 그 영향 때문인지 목재를 다루는 일이 좋았다고 한다. 그렇게 아버지의 현장은 이제 어느새 자신의 현장이 됐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중고교 시절 목자재를 옮기러 현장에 많이 나갔습니다. 돌아다니면서 아버지가 하는 걸 보게 됐죠. 가만히 있기 어색해서 망치질도 좀 하다가 자연스럽게 일을 배웠습니다. 공부 체질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빨리 배웠던 것 같아요. 아마 아버지도 가구를 전문으로 했으면 정말 잘했을 겁니다. 어쨌든 그 때 그렇게 현장의 느낌을 익혔습니다”.
산업디자인 관련 일을 하던 그가 본격적으로 목공 일을 접하게 된 것은 조경 회사에 다닐 때였다. 목공을 제대로 배우려고 하자 바로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다. 부모님의 입장에서 목공은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래를 그리면서 서른 즈음에 2년 정도 홍대 가구 거리에서 일을 배웠고, 결혼을 하면서 공방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생활을 위해서 소품부터 시작했고, 남대문과 고속버스터미널에 원목 소품을 제작해서 납품했다. 꾸준히 블로그 활동을 하던중 대구에 있는 신혼부부 가구를 제작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일을 이어올 수 있었다. 초반 2~3년 정도는 신혼부부 위주로 원목 가구를 많이 제작했다. 그렇게 작업장을 거의 2년마다 옮겨 오다가 현재 지하철 금정역 근처에 자리를 잡게 됐다. 

나에게 말을 거는 ‘고재목’의 매력
“고재를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말 그대로 ‘쓰던 나무’죠. 하지만 매력이 있습니다. 나무의 결이 전부 다른데 고재는 비 바람과 햇빛에 견디면서 결이 더 뚜렷해지고 색도 진해지면서 입체 패턴이 생깁니다. 그러면서 독특한 ‘멋’이 생기죠”. 국내 업체에서 보통 유통되는 고재목은 문짝으로 쓰였던 중국산 ‘느릅고재’가 많다고 한다. 문짝이었기 때문에 길이가 보통 180㎝를 넘지 않는다. 그는 주로 북미쪽에서 들여온 오크 고재나 국내에서 나온 소나무 고재를 사용한다. 북미에서 들여온 고재목은 주로 창고 외부 마감재로 쓰이거나 내부에 기둥으로 사용했던 것들이어서 길이가 더 크고 다양하다. 국내에서 나오는 고재들은 한옥을 철거하면서 나온 것들인데 6미터가 넘는 경우도 있다. 고재를 처음 접하고 첫 작품을 만들 때까지 걸린 시간이 3년이다.
하드우드를 보면 어느 정도 목재 나이를 가늠할 수 있는데, 고재목은 해외에서 들여온 경우 최소 100년의 세월을 거친 나무라 표면의 정체를 알 수 없어 나무가 이끄는대로 따라가야 한다. 처음엔 감이 안 와서 그는 천만 원 어치의 고재목을 쌓아두고 째려보기만 했다고 한다. 마감하는 법에 대해 감을 잡는데만 1년이 훌쩍 지났다. 나무마다 부식된 깊이가 다 달라서 난감한 적도 있었고, 오래돼 새까만 부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처음 만든 고재 가구, ‘가로등 느낌이 나는 벤치’에 앉아 사진을 찍는 순간은 짜릿하고 행복했다. 그때부터 고재와의 본격적인 동행이 시작됐다.  

단 하나 뿐인 가구라서 좋다
고재 가구는 똑같은 느낌을 완벽하게 다시 구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가끔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고객들도 있다. 최근 경향하우징페어에서 고재목으로 만든 벽거울을 박람회에 찾아온 손님에게 팔았는데, 다른 손님이 나중에 와서 떼를 쓰며 본인에게 팔라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황당하고 짜증도 났지만 이게 다 고재 가구를 알아보는 소비자들이 있음을 알아채는 시간이 됐다. 그도 그의 작품에 집착할 때가 있는지 묻자 그는 “물론 만들면서 애착이 가고 완성된 걸 보면 만족스럽고 좋지요. 하지만 전 바로 다른 걸 구상하는 편입니다. 일단 제품 완성이 됐으면 다음 것으로 바로 넘어가야죠”라고 대답했다.

100% 만족할만한 가구 제작이 좋다
그는 고재로 가구를 만들면서 원래의 신념이 더욱 단단해졌다. 그것은 바로 영업을 위한 영업을 하지 않는 것이다. 불필요한 것까지 욕심을 부릴 때 그는 단호하게 그런 제안을 거절하고 솔직하게 선을 긋는다. 어떤 마음인 걸까. “서로 100%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객기나 괜한 자부심일지도 모르지만 제게 오신 분들에게 자식처럼 귀하게 만든 가구를 시집보내는데 하나라도 더 끼워 넣는 것은 용납이 잘 되지 않네요”.
그는 이런 신념을 지키기 위해 외곽에서 집과 작업실을 겸한 건물을 지어 여유 있게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아마 그곳은 카페 같은 쇼룸이 곧 자리할 것이고, 고재에 대한 그의 자신감이 담긴 새로운 작품들이 날마다 쌓여갈 것이다.

대표자: 강연훈
품    목: 고재 가구, 수제 원목 가구
창립일: 2012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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