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MDF의 역사 X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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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MDF의 역사 XIII
  • 김상혁 상임고문
  • 승인 2015.02.1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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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F의 역사 13

2007년 2월 동화기업, 말레이시아 거쓰리(Guthrie) MDF공장 인수
동화기업(대효 승명호)은 2006년 9월 말레이시아 Merbok社의 MDF공장을 인수한지 5개월만인 2007년 2월 24일, 말레이시아 KGB(Kumpulan Guthrie Berhad)社의 거쓰리Guthrie) MDF공장을 인수했다. 말레이시아에서만 3번째 MDF공장 인수이다.

거쓰리(Guthrie) MDF공장은 말레이사아 케다(Kedah)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1996년에 설립된 공장으로 연간 13만㎥의 MDF를 생산하고 있으며 생산된 제품의 65% 이상을 베트남, 파키스탄, 중국 등으로 수출하는 공장이었다.

동화기업은 이번 거쓰리(Guthrie) MDF공장 인수로 인해 국내에는 MDF공장이 4개(동화 제1공장, 제2공장, 대성목재, 충남 아산 MDF공장)가 됐으며 해외에는 4개(Golden Hope社 MDF공장, Merbok社 MDF공장, Guthrie MDF공장, 뉴질랜드 레이오니아社 MDF공장)가 됐다.

연간 생산량은 98만㎥(국내 33만㎥, 해외 65만㎥)으로 늘어나게 됐다. 동화기업이 아시아 MDF업계 1위는 물론이고 글로벌 강자의 위상이 됐음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보드류 업계, 잇단 공장 건설로 원재료 부족 현상
1990년 이후 파티클보드 공장을 비롯해 MDF공장이 잇달아 건설되면서 보드류 업계 원재료 부족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2007년 산림청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보드류업계 원재료 부족규모는 경인 지역이 78만㎥, 부산 지역이 10만7천㎥, 군산 지역이 4만5천㎥으로 총 93만㎥이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업체별 공장 건설 규모를 보면 1989년 청구물산이 군산 지역에 년산 13만㎥ 규모의 MDF공장 건설(년 22만㎥의 원재료 필요), 1989년 거성산업이 충남 아산 지역에 년산 9만7천㎥ 규모의 MDF공장 건설(년 16만㎥의 원재료 필요), 역시 거성산업이 아산 지역에 년산 12만㎥의 파티클보드공장 건설(년 20만㎥의 원재료 필요), 1993년에 동화기업이 인천 지역에 년산 10만㎥의 제2 MDF공장 건설(년 17만㎥의 원재료 필요), 1991년 대성목재가 인천 지역에 년산 12만㎥ 생산규모의 파티클보드 공장 건설(년 20만㎥ 필요), 1991년 성창기업이 부산 지역에 년산 12만㎥의 파티클보드 공장건설(년 20만㎥ 필요), 1994년 동화기업이 인천 지역에 년산 13만㎥ 규모의 제3 파티클보드 공장 건설(년 22만㎥ 필요), 1994년 선창산업이 인천지역에 년산 9만㎥ 규모의 MDF공장 건설(년 15만㎥의 원재료 필요), 1994년 한솔포렘이 전북 익산 지역에 년산 23만㎥ 생산규모의 MDF공장 건설(년 38만㎥ 필요), 1995년 유니드가 전북 군산 지역에 년산 17만㎥의 제2 MDF공장 건설(년 28만㎥ 필요), 2000년 선창산업이 인천지역에 년산 13만5천㎥ 생산규모의 제2 MDF공장 건설(년 23만㎥의 원재료 필요), 2001년 광원목재가 경기 평택지역에 년산 8만3천㎥ 생산규모의 MDF공장건설(년 14만㎥의 원재료 필요) 등 8개의 MDF공장과 4개의 파티클보드 공장이 건설됐다.
 

2008년 9월 산림청, 리기다소나무 벌채 허가
MDF공장의 원재료 부족문제는 이전부터 있어온 문제였다. 선창산업은 대형제재소를 세움으로써 원재료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했으나 동화기업, 유니드, 한솔홈데코 등의 MDF공장은 원재료 부족 문제를 항상 안고 있었다. 산림청은 MDF공장들의 원재료 부족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2008년 9월, 그 해결책으로 전국의 리기다소나무를 벌채하도록 해서 MDF공장들이 사용토록 했다. 산림청은 벌채 적정시기(25년이 지난 것)가 지난 리기다소나무林 17만7천㏊(약 5억3,100만평)를 2009년부터 10년간 연차적으로 베어내게 한 뒤 참나무나 유실수, 약용수 등을 심기로 했고 베어낸 리기다소나무는 용벽재, 펄프재, MDF 원재료 등으로 사용케 했다.

리기다소나무(3엽송)는 1907년 일본인 우에기 박사에 의해 국내에 도입된 소나무로, 재질면에서는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아왔던 소나무이다. 벌채된 리기다소나무 중 수형이 곧고 굵은 부분은 인천의 영림목재 등이 구입해 옹벽을 만드는데 사용했고, 가늘고 구부러진 것은 유니드 등 MDF공장들이 싼값에 구매해 MDF 원재료로 사용했다.

산림청의 리기다소나무 벌채허가 조치에 대해 가장 혜택을 받은 회사는 유니드였다. 당시 유니드는 MDF 원재료의 60% 이상을 리기다소나무로 충당했다.
 

김상혁 상임고문   wwi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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