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MDF의 역사 Ⅸ

2000년 8월 동화기업, 대성목재 인수
동화기업(당시 대표 승명호)은 2000년 8월 7일, 조흥은행 관리하에 있는 대성목재를 인수했다. 대성목재는 1969년 건설된 합판공장, 1989년 건설된 MDF 공장, 1992년 건설된 파티클보드 공장을 갖고 있는 회사였다. 동화기업은 대성목재의 인수 목적으로 합판공장보다는 파티클보드 공장과 MDF 공장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성목재를 인수함으로써 동화기업 목질 판상재 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당시 인수대금은 1,200억원이었으나 이중 700억원은 현금으로 조흥은행에 지급됐고, 나머지 500억원은 대성목재의 부채성 자산을 승계하기로 조흥은행과 합의했다.
대성목재의 MDF 공장은 1987년 건설에 착수해서 1989년 10월에 가동된 공장인데, 당시 대성목재 이영기 사장(유원건설 최효석 회장의 처남)이 월미합판 공장 옆 부지에 공장 건물을 짓고, 독일 짐펠캄프社로부터 conti 10m의 프레스를 수입 설치해 일산 220㎥(년산 6만7,000㎥) 규모로 만든 공장이었다. 당시 MDF의 소비성향이 얇은 MDF를 더 선호할 때여서 3.0~3.6㎜ 두께의 얇은 MDF를 만드는 기계 설비를 설치하는 것이 대성목재 MDF 공장의 특징이었다.

비운의 역사를 지닌 대성목재
이번에 동화기업이 인수한 대성목재는 주인이 9번이나 바뀌는 비운의 역사를 가진 회사이다. 그 비운의 역사를 간단히 기술하면 대성목재는 1936년 일제 강점기때 일본인이 세운 합판회사였다. 이곳은 해방이 되던 해(1945년) 손병도 씨가 불하를 받아 운영했고, 6.25전쟁 이후인 1954년 천우사의 전택보 사장이 손병도 씨로부터 인수해 1969년까지 운영했으며, 1969년 박정희 대통령때 부실기업으로 지정을 받고 조흥은행 관리로 넘어갔다.
1973년 신동아, 원풍, 국제약품 3社가 공동으로 인수해 운영하다가, 1978년에 효성물산에 팔았고, 1986년 효성물산은 유원건설에 대성목재를 양도했고, 1995년 유원건설은 경영이 어려워지자 한보그룹에 팔았다. 그러나 1997년 한보그룹이 부도가 나자 다시 조흥은행 관리로 넘어갔다. 이번 인수로 동화기업은 대성목재의 10번째 주인이 된 것이다.

2001년 8월 광원목재, 평택에 MDF 공장 건설
광원목재(대표 정해진)는 2001년 8월 경기도 평택에 부지를 마련하고 일산 270㎥(년산 8만3,000㎥) 규모의 MDF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기계 설비는 미국의 루지아나 퍼시픽(Lousiana Pacific)社에서 사용하던 중고 설비를 구입해 설치하고 착공한지 1년 7개월만인 2003년 3월에 준공식을 갖고 가동에 들어갔다. 루지아나 퍼시픽社가 사용했던 기계 설비는 1987년형 짐펠캄프社 conti 16m 프레스로써, 1987년 대성목재가 설치한 기계와 동종의 것이었다.
14년간이나 사용했던 기계 설비라 노후화된 것이라서 가동에 들어가긴 했으나, 고장이 자주났고, 생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자 정해진 사장은 동인보드의 MDF 공장 건설과 한솔포렘의 MDF 공장 건설의 경험이 있는 서경부 씨에게 공장경영과 기계 설비의 이상을 점검해 달라고 부탁했다. 서경부 씨는 정해진 회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광원목재 MDF 공장을 정상화 시켰다.

광원목재 정사장이 MDF 공장을 짓게된 동기
광원목재 정해진 사장이 MDF 공장을 짓게된 동기는 당시 항간에 알려진대로 화가 치밀어서 MDF 공장을 짓게 됐다고 한다. 왜 화가 치밀었을까?
광원목재는 1983년에 인천에 세워진 제재소였는데 제재목 장사를 잘하는 회사로 유명했다. 일찍부터 자동화 제재기를 설치해서 기술집약적으로 제재목을 생산함으로써 많은 양의 원목을 제재했다. 광원목재의 세군데 제재공장에서 생산되는 제재목이 많을 때는 하루 800㎥에 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반제재소들의 계산상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가격에 제재목을 판매했다. 시중 가격보다 10% 정도는 싸게 판 것으로 기억된다. 다른 제재소들은 120불대의 뉴송 원목을 켤때 광원목재는 90불대의 펄프용 원목을 제재했다.
펄프용 원목을 제재하면 제재목 수량은 얼마 나오지 않고 부산물인 죽데기(일명 화목)가 많이 발생했다. 광원목재는 이렇게 많이 발생하는 죽데기를 동화기업과 선창산업에 MDF 원재료로 팔아 돈을 만들었고, 그 돈은 제재목을 싸게 팔 수 있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2000년에 들어 갑자기 동화기업과 선창산업은 광원목재의 죽데기(화목)를 사는 것을 거부했다. 수많은 양의 죽데기가 발생하는데 소화시킬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정해진 사장은 화가 났다. 그래서 광원목재가 MDF 공장을 짓게 됐다는 이야기는 한동안 인천에서 회자됐다.

김상혁 전문 기자
 

저작권자 © 한국목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