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클보드의 역사 Ⅵ

1981년 10월, 부산의 태창목재 PB공장도 문닫아
1981년 10월 7일, 부산의 태창목재(대표 정해찬)는 370억원이나 되는 부채와 금리부담을 견디지 못해 회사 재산 보전처분명령신청을 부산지법에 제출했다. 부산지법 민사1부는 태창목재에 대해 임금을 제외한 일체의 채무변재 중지와 재산처분, 소유권 양도, 담보권 설정, 금전차용 등을 정지시키는 재산보전처분결정을 내렸다. 태창목재는 1979년 기계설비의 반자동화 등에 90여억 원을 투자하였는데, 때마침 불어닥친 원목가격 상승, 경기불황까지 겹쳐 1981년 상반기 금리 부담만 38억 원에 달해 더이상 공장을 가동할 수 없었다.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무리한 시설투자를 했으며, 경기침체에 따른 수출부진, 운영자금 부족, 과중한 금리부담을 감당치 못해 도산한 것으로 업계는 분석했다. 이로써 총 사업비 40억 원이나 투자해서 1980년 7월부터 가동에 들어갔던 태창목재 파티클보드 공장도 얼마 가동하지도 못하고, 1년 4개월만에 문을 닫았다.

태창목재 문 닫기 직전 마지막 재기노력, 그러나..
1981년 10월 7일, 법정관리에 들어간 태창목재의 1,100여명 근로자들은 마지막 재기의 노력에 나섰다. 이들은 마치 신들린 것처럼 자신이 맡은 일거리는 물론 동료들의 부족한 일손을 돕는데 주력했다. 회사정문과 공장입구에는 ‘우리의 생활터전 우리가 재건하자’는 글귀가 나붙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합판 죽데기들을 땔감으로 처리했었지만 이제는 차곡차곡 모아서 접착부로 넘겼다. 접착부의 여공들은 접착제로 잘 붙여서 내수용 합판을 만들어 냈다. ‘원자재 절약’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외부 손님들에게 으레 내놓았던 커피는 따듯한 엽차로 대신했다. 영업부 사원들도 회사차량을 타지 않고 시내버스를 갈아타며 회사 일을 마무리 지었다. 사무용지는 양면쓰기를 했고, 핀은 버리지 않고 3~4번도 넘게 썼다.
이로써 줄어든 경비지출만도 월 8천만원이나 된다고 당시 박병태 차장(당시 41세)은 말했다. 회사를 구하기 위해 사무직 64명과 현장 근로자 500여명이 자진사퇴했다. 그러나 사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사주였던 정해찬 사장은 그의 마지막 재산이던 대지 400평, 건평 92평의 개인주택 등 30여억원을 회사에 내 놓았다. 그러나 결국 회사를 살릴 수는 없었다.

1982년, 국내 파티클보드 생산량
1980년 7월에는 부산의 동명목재 PB 공장 폐쇄했고, 1981년 10월 태창목재 PB 공장이 문을 닫음으로써 1982년 현재 우리나라는 인천의 대성목재 PB 공장(1965년 가동, 연 3만㎥), 동화기업 PB 공장(1978년 가동, 연 4만5,000㎥), 동화기업 제2 PB 공장(1978년 가동, 연 4만8,000㎥) 3개 공장만이 가동되고 있어 당시 PB 생산량은 연 12만3,000㎥에 불과했다. 1982년 우리나라 PB 수입량은 11만1,000㎥였다. 그러므로 당시 우리나라 PB 수요량은 23만㎥에 불과했던 것이다. 오늘날 155만㎥의 수요량(생산 80만㎥, 수입 75만㎥)에 비하면 약 7분의 1 수준이었다.

1986년 4월 인천의 원창흥업, 파티클보드 공장 착공
원창흥업(대표 박연척)은 1986년 4월 인천시 북구 가좌동 8,000평 부지에 건평 2,400평 규모의 공장건물을 짓는 것을 시작으로 파티클보드 공장 건설에 들어갔다.
원창흥업은 서독 팔만社, 이탈리아 모둘라社, 파이오니社로부터 파티클보드 기계설비를 수입해 일산 200㎥(년산 6만㎥) 규모의 파티클보드 공장을 건설했다.
총 공사비 48억원이 투입됐으며 착공한지 1년 5개월만인 1987년 9월 완공됐으며, 2개월간의 시험가동을 거쳐 1987년 11월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통상 파티클보드 공장 건설은 6~8개월이면 완공되는데 원창흥업은 1년5개월만에 완공을 했다. 이는 기계설비 수입시 문제가 발생돼 기계설비가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1987년 당시에는 대성목재(1965년 가동, 연 3만㎥)규모, 동화기업 제1 PB 공장(1973년 가동, 연 4만5,000㎥생산규모), 동화기업 제2 PB 공장(1978년, 연 4만8,000㎥ 생산규모)와 원창흥업 PB 공장(1987년 가동, 연 6만㎥생산) 4개 공장이 가동돼 연 18만3,000㎥의 생산이 가능해졌다.

1989년 정부, 파티클보드 수입관세 인하
1989년 5월, 한미 무역협상에서 정부는 파티클보드 관세를 7월 1일부터 11%로 인하했다. 1988년 파티클보드 수입관세가 20%였으나 1989년초 15%로 인하된데 이어 다시 7월 1일부로 11%로 추가 인하됨에 따라 파티클보드 업계는 수입제품과의 가격 경쟁력이 악화되는 것을 크게 우려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그동안 주방가구업계가 파티클보드 구득난으로 주방가구생산을 20~30%정도 줄이는 등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수입량을 늘리는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조치로 관련 업체들이 PB의 직수입을 늘리는 등에 힘입어 PB의 수급상태와 가격이 안정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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