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클보드 역사 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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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클보드 역사 Ⅳ
  • 김상혁 상임고문
  • 승인 2014.07.2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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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材産業史-파티클보드편④

파티클보드 역사 Ⅳ

한샘, 보르네오가구에 많이 팔려
70년대 파티클보드의 품질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당시 파티클보드는 가구산업에서는 획기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합판만 있던 세상에 합판보다 저렴한 판상재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1970년 창업한 한샘은 주방가구를 만드는데 파티클보드를 많이 사용했다. 싱크대 밑의 문짝도, 싱크대 위의 찬장도 파티클보드에 무늬목 또는 무늬종이를 랩핑해서 만들었다.
1966년에 설립된 보르네오가구에서도 가구를 만들 때 파티클보드를 많이 이용했다. 소파 내부의 뼈대로도 이용했고, 아파트 문짝을 만들 때 문짝 내부에 벌집용으로도 많이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병원의 붙박이용 캐비넷, 목욕탕의 옷장 등도 파티클보드에 무늬종이 또는 무늬목을 랩핑해서 많이 사용됐다.
지금은 파티클보드의 품질도 많이 좋아졌고, MDF도 나와서 좋은 세상이 됐지만, 당시에는 MDF도 없을 때였다(MDF는 1986년 10월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1972년 부산의 동명목재, 파티클보드공장 가동
1972년 부산의 동명목재(대표 강석진)도 파티클보드공장을 가동했다. 당시 동명목재는 한국 굴지의 합판회사로서 PF공장, 포르말린공장, 페인트공장 등 목재산업의 모든 공장을 구비하고 있었으므로 파티클보드공장도 상당한 규모로 가동했을 것으로 사료되나 동명목재의 파티클보드공장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그 규모나, 건설비 등 내용을 기재하지 못하는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1980년 동명목재가 폐업할 때 파티클보드공장도 문을 닫은 것으로 사료된다.

1977년 11월 동화기업, 또 하나의 PB공장을 건설하다.
동화기업(오너 승상배, 당시 대표 신송우)은 1977년 11월, 또 하나의 PB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동화기업 소유 인천 북구 가좌동 178의 부지 3,000평에 건평 1,200평의 공장건물을 짓고, 서독의 비존(Bison)社로부터 15억원 상당의 파티클보드 제조설비를 수입해 설치했다.
동화기업 승상배 회장(당시 57세)은 공장 착공에 앞서 직원들로 구성된 기술연수단을 독일에 파견해서 선진공장의 기술을 습득하도록 했다.
이 공장은 일산 160㎥(년산 4만8,000㎥)규모로 지어졌는데 기계구입비 15억원을 포함 총 사업비 30억원이 투입됐다. 착공한지 7개월만인 1978년 5월 준공식을 갖고 한달간 시험가동을 거쳐 1978년 6월부터 본격생산에 들어갔다. 원재료로는 제재단지 내에서 배출되는 죽데기를 사용했다. 당시 생산된 제품은 내수로 60%가 공급됐고, 40%는 수출을 했다. 내수용으로는 주로 농어촌 주택개량사업, 주방가구, 전자제품 케이스용으로 팔려나갔다.

1979년 3월, 부산의 태창목재도 PB공장 건설
1979년 3월, 부산의 태창목재(대표 정해찬, 선창산업 정해수 회장의 바로 밑 동생, 정태성회장의 3남)도 파티클보드 공장건설에 착공했다.
정해찬 사장은 태창목재의 수영 제2공장 프린트공장 옆자리에 파티클보드공장을 짓기로 하고 이탈리아 팍노이(pagnnoi)社에 27억원을 주고 파티클보드 기계 설비를 수입했다.
태창목재가 수입한 이탈리아 팍노이社 기계설비는 다단식 멀티프레스로써 기존의 대성목재, 동명목재, 동화기업이 사용하고 있는 다단식 싱글프레스보다 성능이 좋아서 일시에 14장의 PB를 생산할 수 있는 기계설비였다.
이 공장은 일산 210㎥(연산 6만3,000㎥)의 규모로서 총 사업비가 40억원(기계설비 구입비 27억원 포함)이 투입됐으며 착공한지 11개월만 1980년 2월 말 완공돼 가동에 들어갔다. 당시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파티클보드 공장이었다.

1980년 4월 태창목재, 파티클보드 일본에 첫 수출
1980년 2월 완공돼 3월부터 본격가동에 들어간 태창목재(대표 정해찬)는 가동 2개월만인 1980년 4월 일본으로 파티클보드 50만달러 어치를 수출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으로부터 200만달러의 오더도 확보했다. 파티클보드는 합판공장에서 나오는 죽데기, 폐목, 톱밥 등을 원료로 하기 때문에 가격면에서 합판가격의 60% 정도 저렴해서 판매전망이 밝은 품목이었다.
당시 태창목재는 파티클보드의 매출규모를 150억원으로 잡고 그중 수출도 1,000만달러를 달성한다는 목표하에 생산에 매진했다. 당시 파티클보드는 동남아 지역으로부터의 주문도 있고, 국내가구 메이커들로부터의 주문량도 많아 태창목재의 매출목표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됐다.

김상혁 상임고문   wwi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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