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임산공학과 이원희 교수

성안스님 정녕 가셨습니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갑작스런 부음에 도무지 믿기지 않아 그저 당혹스러울 뿐입니다. 대장경판의 보존문제로 많은 분들과 접하면서 해인사 보존국장이신 성안스님의 이야기를 늘 해오곤 했었지요. 사고 난 다음날 오전에 스님의 갑작스런 부음을 전해 듣고 저는 정말 꿈인가 했습니다. 아무 인사도 없이 갑작스럽게 먼 길을 떠나가 버렸다는 사실에 원망스럽고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견디기가 힘듭니다.

해인사로 달려간 그날 밤, 스님의 맑고 밝은 영정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은 그간 스님께서 해 오신 일들을 마무리 짓지 못한 아픔 때문이었겠지요.

지난해 해인사 경내에서 수확한 빨갛게 잘 익은 감을 한상자 어깨에 메고 제 연구실을 찾았을 때가 새삼스럽습니다. 스님 갑자기 이게 뭡니까? 하니 이거 뇌물이유! 라는 장난기 섞인 정감어린 충청도 사투리로 되받던 모습이 어제 일과 같습니다. 승가대학에 입학하는 사람이 많은지 묻는 질문엔 요즘 젊은 애들은 핸드폰이나 PC방에서 게임하는 걸 더 좋아하기 때문에 그 수가 적다는 말씀도 하셨지요.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는 대장경판과 장경각의 수호자로서 그간 얼마나 많은 애를 쓰셨는데 그 과정과 결과를 보지 못하시고 떠나시다니 참으로 애통하기 그지없습니다.

성안스님께서는 늘 목판 문화는 재료적인 측면에서 목재과학자가 인문학자들과 같이 어우러져야만 우리문화재의 사회문화적인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있고 과학적인 보존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목재문화계를 위해 목재학자들과의 공동연구는 필연적이라고 해 오셨지요. 또한 경판의 보전문제는 목재학계와 연대를 쌓아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는데 기초 작업 과정에서 떠나시게 되어 참으로 애석하고 억울합니다. 목재는 일반소재와는 달리 살아있는 생물이라서 속이 깊고 다루기 어렵다는 말씀을 수차 나누기도 하여 목재재료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참 많이 해 주셨지요. 따라서 대장경판의 보존을 주도적으로 목재과학자가 해야 한다는 말씀을 일관되게 해 오셨는데 문화재청의 반대로 공동연구가 무산되었다고 하셨지요. 81,350매의 대장경판의 보존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신 스님을 잃은 일은 우리 목재문화계나 학계로서는 커다란 슬픔과 아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충남 보령에서 나시어 26세에 불교에 귀의하시고 48세의 한창인 때에 갑자기 저희들 곁을 떠나가신 비통함을 저희 목재관련 업계 및 학계와 더불어 깊이 애도하는 바 입니다. 이제 남아있는 자들이 그간 스님의 못다 이루신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지켜봐주시고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성안스님, 천상에서 부디 모든 일 잊으시고 속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바르게 이어지도록 도와주시며 늘 보여주시던 해맑은 웃음으로 바라보아 주시길 목재문화계와 학계 모두가 두 손 모아 빌며 스님을 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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