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제재소의 등장

MDF 공장을 2개나 가동하고 있던 선창산업은 원자재 난에 봉착하자 2005년 6월, 한진중공업 부지 1500평에 대형제재소를 건설하고, 제재소에서 발생하는 죽데기나 톱밥을 MDF 원재료로 직접 투입하는 시설을 갖췄다. 직경 14㎝부터 45㎝까지의 원목이 자동으로 투입돼 주야간 풀 가동시에는 월 5만㎥(일산 2000㎥)의 제재목을 생산할 수 있는 제재소였다.
선창산업은 MDF 원재료를 만들기 위한 명분이었지만 여기서 생산되는 제재목은 시중에 싸게 팔려 나갔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일반 제재소들은 뉴송 원목의 정상목(K-grade)을 125$/㎥에 수입해 제재했으나 선창산업은 펄프 grade를 90$/㎥(CNF)에 수입해 제재했다(물론 펄프 grade 전량을 제재하는 것은 아니었고 50%정도를 제재한다고 해도 원가는 대단히 낮기 때문이었다). 대형 제재소는 선창산업뿐이 아니었다. MDF 공장을 갖고 있는 한솔, 유니드 등도 대형제재소를 운영했다.
1990년대 후반 합판수요는 감소하고 MDF, PB 등 보드류 수요가 증가하자 보드류 회사들은 기존 시설을 확충하거나 새로운 MDF 공장을 지었고, 짧은 기간 내에 보드 생산 캐퍼가 늘어나자 보드류 회사들은 원자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보드류 업체들은 국내 화목에 의존하는 원자재 확보방식만으로는 그 양을 충당할 수 없게 됐고 자체적으로 원자재를 생산, 조달하는 방식을 채택하기 위해 대형 제재소를 건설했던 것이다.

소형 제재소들의 감소
2000년대 들어 3~4개의 보드류 업체들이 대형자동 제재공장을 운영하면서 부수적으로 생산되는 제재목은 시장 전체 공급량의 20~30%를 점유했고, 제재목 시장 가격 주도권도 보드류 업체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당시 소형 제재소들의 제재목 가격과 보드류 업체들이 대형 제재소에서 생산해 낸 제재목과의 가격 차이는 재당 100원을 넘나들었다. 이러한 가격 차이는 소형 제재소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소형 제재소들은 제재 자체만으로도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됐던 것이다. 이로 인해 문을 닫는 제재소들이 많았다.
1990년 말에는 전국에 1,600여개의 제재소가 있었으나 2008년 전국의 제재소는 635여개(산림청 조사)로 1,000여개의 제재소가 줄어들었다. 물론 대형 제재소의 등장이 소형 제재소들의 문을 닫게 한 원인의 전부는 아니지만, 하나의 큰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이러한 현상에 대해 강력한 반박을 하고 나선 사람은 세원그린피아(인천 소재 제재소)의 김사윤 사장이었다. 그는 “지금 제재목 시장은 지극히 왜곡된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지금 제재목 시장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보드류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다. 보드류 시장의 수요 때문에 보드류 업체들이 제재목 생산을 계속하고 있어 소형 제재소들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보드류 업체들의 제재공장은 제재목을 생산하기 위한 제재업이 아니고 보드류 원자재인 칩을 생산하기 위한 원자재 생산업이다. 제재목은 부산물이고 죽데기나 톱밥이 주산물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보드류 업체들의 대형 제재공장이 보드생산의 원재료인 칩을 생산하기 위해 제재목을 부산물로 생각해서 시중에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자, 당시 뉴송 제재소를 운영하고 있는 세원그린피아로서는 당연히 할 소리를 하고 있었다.
당시 뉴송 원목 가격은 몇 달 사이에 20~30%씩 인상됨에도 불구하고 제재목 가격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보드류 업체들은 칩의 자체생산으로 원재료 확보에는 안정성을 추구했지만 제재공장은 보드산업을 위한 제재일 뿐 기존 소형 제재소들에게는 강력한 위협의 존재였던 것이다. 대형 제재공장의 등장으로 동종 품목인 뉴송을 제재하는 제재소들은 경쟁력을 일순간에 상실했고, 일부 제재소들은 뉴송 제재에서 미송제재로 품목전환을 하기도 했지만, 거기도 경쟁이 치열해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송 원목 수출세 부과
2006년까지만 해도 전국에는 소송 원목을 제재하는 소형 제재소가 무척 많았다. 웬만한 공터만 있으면 건물도 없이 천막을 치고 제재기 한 대만 놓고 소송 원목을 제재하는 제재소가 많았다. 당시 소송 원목은 참 많이 수입됐다. 1990년대에는 연 100만㎥이 수입되던 것이 2001년부터 2006년까지는 매년 150㎥씩 수입됐다. 그러던 것이 2007년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하바로스크 방문을 계기로 소송 원목에 대해 수출세 25%를 부과하자 갑자기 비싸진 소송 원목의 수입량은 2008년 70만㎥로 줄어들었다. 이때 소송 원목을 켜던 제재소들의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2008년 산림청 조사에 의하면 전국의 제재소는 600여개인 것으로 조사됐다. 1990년대 말 전국에 1,600여개의 제재소였던 것이 물경 1,000여개의 제재소가 문을 닫은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전국의 제재소가 이렇게 많이 줄어든 원인은 3가지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첫째, 보드류 업체들의 대형 제재소 등장. 둘째, 소송원목의 수출세 부과. 셋째, 리먼브러더스로 인한 국제적 금융위기로 인한 건설경기의 침체. 이 세가지 요소가 전국의 제재소 감소를 가져왔다고 봐야 할 것이다.

* 당시 목재업에 종사했던 분들의 많은 제보를 기다립니다. 추억 속에 남아있는 얘기들을 wwic@ha nmail.net이나, 010-3145-8954로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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