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MDF 공장 건설 추진
1984년은 국내 합판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잃고 사양화 추세를 보일 때였다. 합판의 원재료인 원목은 연일 가격 상승을 했고, 그나마도 수입물량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만들어진 합판은 수출이 잘 되지 않아 합판 사업은 점차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합판공장들이 시련을 겪고 있을 때였다. 1980년 5월 동명목재가 문을 닫았고, 이어 6월 고려목재가 문을 닫았으며, 동년 7월 경동목재가 부도가 났다. 81년 2월 삼신목재가 문을 닫았고, 81년 12월 신신합판이 문을 닫았다.
1982년 1월 국내 합판업계의 수요물량은 800만장으로 1978년 합판 경기 호황 때의 1,800만장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지만 아직도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많았다. 결국 정부(전두환 정부)는 1982년 2월 합판업계 구조조정에 나섰고, 1982년 8월 대명목재를 문을 닫게했고, 82년 10월에는 광명목재를 문을 닫게했다.
이러한 시대상황을 인식한 동화기업 승상배 회장(당시 64세)은 급속한 수요증가가 예상되는 판상재 수요에 대응하는 MDF공장 건설계획을 했던 것이다. 당시 동화기업 승상배 회장의 MDF사업진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MDF제조에 대한 전문가도 없었다. 소비자들은 MDF가 어떤 제품인지 잘 알지도 못했으며 홍보 또한 이뤄지지 않아 이를 찾는 수요자도 많지 않았고, 국내 시장규모도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을 때였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MDF는 수입제품만이 있을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화기업 승상배 회장은 MDF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고 다른 기업들이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내에서는 가장 먼저 MDF사업 진출을 결정하고 이를 빠르게 추진시켜 나갔다.

1985년 MDF 공장 착공
1984년 말, 동화기업 승상배 회장은 MDF공장을 건설할 것을 결정하고 인천시 서구 가좌동 제재단지 내에 MDF 공장을 지을 부지를 마련하는 한편, 독일의 짐펠캄프(Simpel Kamp)社와 설비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설비도입 자금은 국민은행의 국민리스자금 200억원을 지원받아 해결했다. 국민리스는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국민은행이 전액 출자해 1984년 10월에 설립된 회사였다.
동화기업은 상공부, 산업연구원에 의뢰해서 MDF 사업 타당성 자료를 만들고, 그 자료를 국민리스에 제출해서 국민리스 자금지원을 받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동화기업이 국민리스 자금 최초의 수혜자였다. 드디어 1985년 8월, 동화기업(당시 대표 승은호, 회장 승상배)은 인천 제재단지 내에 마련한 부지에 일산 220㎥ 규모의 MDF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1986년 10월, MDF 공장 가동
MDF 공장을 착공한지 1년 2개월만인 1986년 10월, 드디어 MDF 공장이 완공돼 준공식을 갖고 생산에 들어갔다. 국내 최초로 건설된 이 MDF 공장은 5.5㎜ 두께의 건식 MDF를 생산하는 연간 6만6,000㎥의 시설을 갖춘 규모였다. 이로써 동화기업은 1975년 파티클보드 공장 건설로 목재 판상재 기술산업분야에 진출한 이래 목질 판상재에 대한 노하우를 이용, 목재산업 분야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장치산업인 MDF산업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장을 가동한지 2~3개월이 지날 때까지도 판매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제품이 잘 판매되지 않자 공장과 창고에는 제품이 산더미같이 쌓였다. 그것도 모자라 야외 야적장에도 제품을 쌓아놓고 천막을 둘렀다.
그러나 승상배 회장은 가동을 멈추지 않게 했다. 사전에 사업성 검토를 충분히 한 만큼 성공을 확신했다.

가구업체-건설업체들, MDF 사용 증가
가동한지 4개월째부터 MDF는 점차 판매가 늘기 시작했다. 당시 붐이 일던 아파트 건설에 발맞춰 건설업자와 가구업자들이 비싼 합판은 계속 쓸 수 없었고, 파티클보드를 써왔으나 파티클보드보다 품질이 좋은 MDF는 그들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자재였던 것이다.
MDF는 표면이 깨끗하면서도 원목의 분위기를 갖춘데다가 내구성이 파티클보드 보다 우수했고, 가격 또한 합판의 3분의 1 수준으로 저렴했다.
게다가 사용용도가 다양해 가정이나 직장에서 책장이나 수납장의 용도는 물론, 악기, 내장재, 건축재, TV케이스, 전축케이스 등의 용도로 팔려나갔다.
MDF가 알려지고 팔리기 시작하자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야적장 재고까지 바닥날 정도로 팔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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