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기업주식회사 Ⅶ

1975년 11월, 동화기업 을지로 빌딩, 선경그룹에 19억원에 매각
동화기업 승상배 사장은 을지로 동화기업 빌딩을 선경그룹(대표 최종현)에게 19억원에 매각했다. 동화기업 을지로 빌딩은 대지 230평에 지하 3층, 지상 11층 건물로 연 건평은 4300여평이었는데 동화기업은 이 빌딩을 팔아 재기의 발판으로 삼으려했다.
선경그룹은 선경의 모든 방계회사를 이곳으로 이전해서 업무의 능률을 높이기로 했다.

1978년, 인도네시아 동화기업 원목 벌채현장에 가다(1)
‘아빠 까바르?’, ‘뚜안 오랑 재파니스 아따우 오랑 코리아?’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묻는다. 한국인이라고 대답하니 무척 반가운 표정이다.
인도네시아에는 많은 한국인들이 일하고 있어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한국인을 가까운 이웃으로 여기고 대접해준다. 1978년, 동화기업(대표 승상배)의 벌채 현장을 찾았었다. 섭씨 33도. 습도까지 높아 찌는 듯한 무더위였다.
자카르타에서 가루다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카리만탄 발릭파판에 도착했다. 지프를 타고 몇 시간을 가서 내리는데 갑자기 ‘우르릉쾅’하고 마른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린다. 놀라서 돌아보니 거목이 넘어져 있었다.
넘어진 거목에 4~5명이 달려가 기계톱을 대자 날카로운 금속음이 산을 울렸다. 몇 사람은 껍질을 벗겼다. 기계톱을 들고 있던 인도네시아인은 “방금 쓰러뜨린 나무는 메란티라는 나무로, 직경이 155㎝, 수고가 60m로 수령은 약 80년이 됐으며 사용 가능한 부분이 약 39㎥ 정도 된다”고 했다. 이어 “현지에서 팔아도 2300달러는 받는다면서 이 정도의 메란티가 ㏊당 3그루만 있어도 노다지를 캐는 셈인데 보통 ㏊당 두 그루를 찾기도 힘들다”고 했다.

원시림과 싸우는 한국인, 원목 운송하려면 100㎞ 길 닦아야
“비가 오면 나무를 벨 수도 없고 진흙탕이 돼 운반을 할 수도 없으며 약간만 가물어도 강물이 말라붙어 뗏목을 운반도 못한다. 작업을 할 수 있는 날이 한 달에 보름도 될까 말까 이다”라고 한국인 종업원들이 말한다. 먼지와 땀에 범벅이 된 얼굴과 옷에 개의치 않고 구리 빛 팔뚝에 연신 힘을 주는 한국인들의 모습은 마치 전쟁터의 병사를 방불케 하고 그들이 쓰러뜨린 원목은 노획물처럼 쌓인다.

개발 끝나면 학교, 병원도 세워
인구 300만의 대도시 발릭파판에서 서쪽으로 115㎞거리인 ‘뽀르꾸인’, 이곳에서 북쪽으로 40㎞ 거리인 ‘또유’, 이곳이 동화기업(당시 생산본부장 김상각 씨)의 사업구역이다.
10~15도의 경사진 산에서 정글을 헤치며 한국인 40여명과 현지인 400여명이 원목을 자르고 운반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김상각 본부장은 “밀림지대를 개발하는 것이 어느 지역이건 비슷하게 힘든 작업이지만, 이곳 현지인들을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가 벌채작업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주민과 종업원 자녀들을 위해 초등학교와 이슬람 사원을 지어주고 운영비를 부담하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학용품도 사준다고 했다.

원목 운송하려면 100㎞ 길 닦아야
나무를 베어 낸 다음 임도까지 끌어내는 작업도 힘들다.
나무 하나의 무게가 수십 톤에 이르니 중장비로도 여간 힘든게 아니다. 다음으로 저수장에 저목 했다가 뗏목으로 만들어 운반한다. 원목을 보통 100여개씩 묶어 강을 따라 5~6명의 사람이 타고 예인선이 끌고 선박이 대기하는 곳까지 간다.
이 뗏목을 운반하는데도 비가 며칠만 내리지 않으면 강물이 말라 곤란한 일이 생긴다.
세관검사, 선적 등도 까다로운 작업과정이다.
인도네시아 현지인을 관리하는 노무관리도 하나도 손 쉬운게 없다. 인도네시아 현지인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말은 “아이구 죽겠다”라고 한다. 한국인들이 무심코 자주하는 이 말이 원목벌채작업이 얼마나 힘든 작업인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가장 그리운 것은 ‘고국소식’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국인의 고용증대를 위해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해 노동력은 인도네시아 사람으로 쓸 것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
외국의 자본은 유치하지만, 노동력까지 끌어들이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지인 20명에 한국인 1명꼴로 인원을 배치하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고국소식’이라며 ‘잡지라도 정기적으로 구독 할 수 있다면’ 하는 것이 산림벌채 지역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의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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