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산실업 Ⅱ

IMF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다
외환위기가 도래했던 1997년을 우리 모두가 다 기억하고 있다. 그 해 11월 23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고, 그 여파로 금리는 25%로 폭등하고 환율은 1700원대로 껑충 뛰었다. IMF사태가 발생한 이면에는 ‘한보’사태가 있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 시절이었는데 정부 돈을 빌려 사업을 키워왔던 한보가 1997년 여름, 무너진 것이 IMF의 단초가 됐다고 볼 수 있다. 한보의 부도사태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은행들의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게 했다.
당시 은행들은 나라밖에서 단기자금을 차입해 한보 등 대기업에게 대출을 해줬는데 한보사태로 이자를 내지 못하자 단기자금을 빌려준 외국의 은행들은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나라 외환 보유가 38억 달러 밖에 되지 않음은 당시 신문지상에도 발표돼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IMF 여파는 특히 수입상들에게 큰 타격을 줬다. 모든 수입업자들은 800원대에 수입한 물품을 1700원으로 결재해야 했다. 당시 삼산실업도 5억원여의 제재목을 수입하고 있었는데 10억원을 갚아야 했다.
삼산실업 김광채 사장과 김낙기 사장은 10여 년간 제재목 유통 사업을 하면서 알뜰히 모은 돈으로 각각 5억원씩의 CD를 사놓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 두 사람은 이 CD를 팔아서 은행결재를 하고 다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이야기는 당시 본인들이 지인들에게 말해 알려진 사실이다.

1999년 12월, 석남동 유일타장 부지 매입
IMF사태를 지혜롭게 잘 넘기고 재기에 성공한 삼산실업은 1999년 12월, 인천시 서구 석남동에 위치한 유일타장의 부지 5100평을 매입했다. 제재목을 야적하기 위해 야적장이 필요해서 매입한 것이지만 그 당시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5000여평의 부지를 매입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 부지매입으로 인해 회사의 성장발판을 마련하게 되었고 오늘 날의 삼산실업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당시 유일타장으로 들어가려면 좁은 길을 돌아서 들어가야 했다. 그러다가 2003년경 삼산실업이 매입한 부지 옆으로 큰 도로가 생기면서 땅값이 상승하자 삼산실업은 그 부지에 3700여 평의 창고를 짓고, 건평 400평가량의 사무실 건물도 2층으로 지었다.

2000년 4월부터 보드류 수입판매
삼산실업은 2000년대 들어 활엽수 제재목의 수요가 감소하는 현상을 감지하고, 제재목만으로는 수익을 창출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 보드류를 수입·판매할 것을 결정한다.
처음에는 MDF 비규격 분야를 공략했다. 당시 국내에서 생산되는 MDF와 모든 수입상들이 수입하고 있는 MDF는 정규격품 이었는데 이들 제품과 차별화하기 위해 비규격 제품을 수입했다. 즉 4×8 사이즈가 아니라 4×10, 4×12, 4×14, 4×16과 같은 규격을 수입해서 판매함으로써 특수성을 노렸다.
제재목 유통의 비중을 줄이고, 보드류 유통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에 따라 2002년에는 파티클보드도 수입해 유통했다. 주로 핀란드 스웨덴 등 유럽으로부터 국산 파티클보다 품질이 좋은 파티클 보드를 수입했다.
파티클보드도 비규격 제품으로 사활을 걸었다. 삼산실업하면 비규격 제품이 떠오를 정도로 유통에 심혈을 기울였다. 처음에는 보드류 비율이 10~20%로 시작했으나 2005년경에는 50%까지 늘어났다. 2009년에는 시장변화에 대응하기위해 OSB, 라미나 합판, 코아 합판도 수입했고 북미산 구조재도 수입했다.
2005년 이후 년간 200억 매출을 달성하고 있으며 월 200컨테이터 이상을 수입·유통해 오고 있다.
‘삼산실업에 가면 다 있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삼산실업은 다양하고 질 좋은 제품을 항상 보유하고 있고 창고에는 200억 가량의 제품이 늘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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