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창산업 제재공장 Ⅳ

선창산업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자동시스템 제재공장을 갖게 된 이면에는 MDF 공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창산업이 MDF사업을 하게 된 속사정을 알아보자.

MDF 사업 참여배경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합판공장들의 원재료가 침엽수로 전환됐다. 선창산업 정해수 회장(당시 65세)은 MDF 공장을 지을 필요성을 적극 느꼈을 것으로 사료된다.
합판공장의 수율이 55%라면 45%의 부산물이 발생하고 제재공장의 수율이 60%라면 40%의 부산물이 발생한다. 이 많은 부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여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며 그 부가가치를 최대로 높일 수 있는 사업이 MDF 공장의 건설이었다. 투자할 자본과 땅이 있다면 실현시킬 수 있는 사업이며, 더욱이 MDF 시장성이 있다면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매력적인 사업인 것이다.
1990년대에는 MDF가 가구 재료로 합판보다 인기가 높았다. 당시 주택형태가 단독주택 위주에서 아파트 위주로 바뀌었고 아파트 내부에 들어가는 가구도 붙박이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MDF나 합판 등의 목재 자재가 대량으로 필요했었다.
이러한 수요를 합판으로만 충당하기 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MDF를 선호하는 추세로 폐재를 활용하는 MDF 사업으로의 전환은 돈방석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선창산업으로서는 가구공장(당시 선퍼니쳐)도 갖고 있었고, 합판공장과 제재공장에서 대단한 양의 부산물이 발생되고 있었다.

1995년 7월, MDF 공장 가동
이러한 연유로 선창산업은 1992년부터 MDF 사업의 실질적 사업성 검토에 들어갔으며 1년여동안 사업타당성 검토를 했다. 1993년 사업성 검토가 끝나자 곧바로 독일의 MDF기계제작사(짐펠캄프社)에 기계발주를 했다.
기계발주를 할 때는 당시 가동되고 있는 국내 MDF 공장들의 기계 설비를 참고로 했다. 특히 1989년 가동된 대송목재의 MDF 공장 기계설비가 conti 10m 프레스인 점을 감안해서 당시로서는 최신기계설비인 conti 18m 연속 프레스를 선택했다.
conti 10m 프레스는 프레스 길이가 짧아 얇은 MDF(3.6㎜ 정도)는 생산할 수 있어도 두꺼운 MDF는 못 만드는 설비였다. 기계를 발주한지 1년만인 1994년 6월 독일로부터 기계설비가 도착했다. 한편 합판공장 옆 부지 1만4500여평에 4500평의 건물도 짓기 시작했다.
MDF 공장을 착공한지 1년 2개월만인 1995년 7월, 공장건설을 완공하고 시범생산에 들어갔다. 실제로 공장이 완공된 것은 1995년 4월이었다. 그러나 기계설비 점검 등 시운전으로 인해 그 해 7월에 첫 생산을 가동했으며 본격적인 생산은 그 해 10월부터였다.
선창산업은 이 공장을 건설하는데 총 300억원(기계설비 포함)을 투입했다. 공사에 투입된 업체만도 건축, 기계설치 등 약 40개 업체가 참여했으며 참여인원도 외국의 MDF 전문가 등 연 2100여명에 달했다. 선창산업이 이 MDF 공장을 지을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원목을 야적하고 하역하고 합판공장에 원목을 투입하고 있는 상태에서 공사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 컨티롤(conti roll)프레스의 베이스 빔(base-beam)을 실은 선박이 예정보다 45일 늦게 도착해서 공사가 늦어지기도 했다.
독일 짐펠캄프社의 conti roll 18m 연속 프레스는 폭이 2.5m였고 4㎜두께 기준 일산 300㎥(연8만6400㎥)를 생산할 수 있는 기계설비였고 두께 2.5㎜부터 30㎜두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 할 수 있는 기계였다.
당시 국내에서 컨티롤 프레스 방식을 채택한 MDF 공장은 대성목재(conti 10m프레스), 청담물산(conti 16m프레스), 동인보드(conti 18m프레스), 동화기업 제2 MDF 공장(14단 멀티프레스)가 있었다.
이 방식 외에도 당시 가동되고 있는 MDF 공장은 동화기업 제1 MDF 공장과 청구물산(roller 5m 프레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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