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민산업 Ⅸ

집성재로 만드는 세상을 꿈꾸다
1978년 작은 제재소로 출발한 경민산업 이경호 사장은 1995년 집성재로 만드는 세상을 꿈꾸며 구조용 집성재 생산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 경민산업은 우리나라 최고의 집성재 제조회사라고 하면 ‘경민’이라는 이름이 떠오를 정도로 업계 최고의 회사가 됐다.

6년전부터 2세 경영
이제 그 꿈은 그의 장남인 이한식 대표에게로 넘어갔다. 2007년 경민산업 이경호 회장(당시 77세)은 대표직을 큰 아들(이한식 씨)에게 물려주고 본인은 회장으로서 경영일선에서 뒤로 물러났다. 이경호 회장의 장남 이한식 대표(1959년생, 現 55세)는 1981년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1983년 ROTC장교로 제대 한 후 삼성에 입사해서 3년간 근무했다. 1986년 삼성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도 하면서 부친의 사업을 도와 현지에서 미송을 선적해 경민으로 보내는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경민산업은 미송을 제재해서 일본으로 수출을 많이 할 때였다. 1992년 경민산업이 영창악기에 피아노다리를 납품할 때는 캐나다로 건너가서 스프루스를 선적해서 경민산업으로 보내는 일을 했다.
2007년 1월 한국으로 귀국한 이한식 대표는 2개월간 공장사정을 파악한 후, 2007년 3월 경민산업을 물려받았다. 당시 그의 나이 49세 때 였다.

구조용 집성재 개발에 매진
지난 7월 어느 날, 필자는 이경호 회장의 초청으로 경민산업을 방문했었다. 3년만에 만나게된 이경호 회장은 83세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건강함은 여전했다. 이경호 회장의 집무실은 목재회사 답게 실내는 거의 목재로 장식돼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경호 회장의 장남 이한식 대표와 인사를 나누었다. 이한식 대표는 구조용집성재 개발에 매진한 이유에 대해 “목재산업이 사양산업이라고 하지만 목재는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사라져 본적이 없는 소재입니다. 그만큼 인간에게 친숙한 소재이며 목재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목재 자체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부친께서 목재의 마지막 단계는 구조용 집성재라고 판단하고 현재의 사업을 시작했고, 저도 자연스럽게 구조용 집성재개발에 몰두하게 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설계에서 시공까지 뛰어든 이유
이어 이한식 대표는 “2007년 귀국해서 구조용 집성재 생산을 맡고나서 수요에 맞춰 공급만 하면 될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대부분의 건설사는 목재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습니다. 구조용 집성재는 더욱이 대형건축물에 사용되는 것이어서 시공상 정밀도가 크게 요구됩니다. 결국 시공기술에도 발벗고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단순히 제품을 생산해서 판매하는 데만 머무를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제조물 생산자로서의 책임감 때문이며, 구조용 집성재의 파이를 키우기 위함이었습니다”라며 설계와 시공에 뛰어든 이유를 설명했다.

구조용 집성재 제조 15년만의 결실
지난 2009년,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의 준공부문에서 수상작에 경민산업의 작품이 두 개나 올랐다. 한 기업에서 두 개의 수상작을 올렸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금번 수상작에는 유난히 대형목구조가 많았다는 것이었다. 모두 구조용 집성재를 활용한 작품들이었다.
이한식 대표는 “모든 작품이 우리 회사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고, 구조용 집성재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이며, 더 많은 목조건축물이 생겨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중요했습니다. 우리가 모두 이뤄낸 성과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국내 구조용 집성재 시장형성 초기부터 경민산업이 일조해 왔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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