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민산업 Ⅳ

2011년, 이경호 회장 철탑산업훈장
2011년 4월 4일, 산림청은 경민산업 이경호 회장(당시 81세)에게 철탑산업훈장을 수여했다. 국산 낙엽송 간벌재를 이용한 구조용집성재를 개발, 공급해 국내 목재가공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목재업계로서도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1995년부터 구조용 집성재를 만들어온 경민산업은 2000년부터는 국산 낙엽송 간벌재를 이용한 구조용 집성재 제조기술을 개발해 국산재 활용에 크게 기여했다.

그동안 제대로 활용가치가 없었던 낙엽송 간벌재를 부가가치가 높은 구조용 목재로 활용케 함으로써 산림을 경영하는 사람들에게도 계획적인 간벌을 가능하게 했으며, 건강한 숲을 키우는데 일조했던 것이다.

원래 국산 낙엽송은 간벌 소경재가 많이 나오는데 소경재는 여러가지 결점을 많이 갖고 있어 목재로서 사용된 바가 없었다. 그러나 경민산업은 우리나라 최초로 낙엽송 구조용집성재 제조설비를 완비했고, 산림과학원 전시실의 기둥과 보를 설치함으로써 낙엽송 구조용 집성재 시대를 열었다.

그 후 총 600여 곳의 목조건축물과 순수 목교, 조경시설물 등을 낙엽송 구조용 집성재로 설치했다. 2005년부터는 매년 3000㎥이상의 국산 낙엽송 간벌 소경재를 사용했다. 2010년에는 농림수산식품부 기술기획평가원으로부터 낙엽송 소경재를 이용한 한옥 건축용 다중 접착부재의 개발을 의뢰받아 2010년 7월 1일부터 2012년 6월 30일까지 2년간 낙엽송 간벌재의 한옥부재 사용에 대한 연구를 했다.

창업주 이경호 회장
한국에서 처음으로 ‘구조용 집성재’ 제조를 시작한 경민산업 이경호 회장(1931년생, 現 83세)의 고향은 서울 용산이다. 그의 나이 15세때 해방(1945년)을 맞이했으며 일제가 세운 철도학교를 다녔다. 철도학교(지금의 철도고등학교) 6학년 때(당시는 중학교가 6년제일 때였음) 당시 그의 나이 20세때 6·25전쟁 일어났다. 부산으로 피난가서 철도국의 통신사역 일을 보았는데(그때 젊은 사람들은 모두 군대로 보낼 때였다) 헌병에게 붙잡혀 포항훈련소로 징집돼 갔다. 포항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는데 마침 사관후보생을 뽑는 시험이 있었다. 이왕 군대에 온 것 장교로 근무할 생각으로 사관후보생 시험을 쳤는데 다행히도 합격을 했다. 사관후보학교를 졸업하고 육군보병학교에 공병장교로 배치 받았다. 군에서 쭉 건설 분야 공병장교로 18년간 근무했다.
1968년 그의 나이 38세 때 소령으로 예편했다.

예편 후 현대계열사에 취직해서 3년간 근무하다가 1971년 미국의 합판수입회사인 에반스프로덕트(Evans product co,)社에 한국 주재원으로 입사했다. 여기서 목재와의 첫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서울 소공동에 있는 에반스社 본사에 근무하며 합판회사들(동명목재, 성창기업, 광명목재 등)에 출근하다 시피하면서 합판을 검수해 미국으로 보냈다.

그런데 에반스(Evans)社는 합판을 수입해 갈 뿐 아니라, 한국의 합판회사들에게 인도네시아 원목을 오퍼해 팔기도 했다.

이를 눈여겨 봐오던 이경호 회장은 1975년 에반스社에 사표를 내고 친구인 이영승 씨와 원목 오퍼상을 차려 독립했다. 그 때 오퍼상 이름을 경민산업이라고 했고 1978년 제재소를 차렸을때도 제재소 이름을 오퍼상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 경민산업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경호 회장은 원목오퍼상을 차린 후 주로 파푸아뉴기니산 원목을 오퍼해서 동명목재, 성창기업, 광명목재 등에 팔았다. 당시 에반스社는 인도네시아산 원목을 주로 오퍼 했지만 이경호 씨는 에반스社가 미쳐 손이 닿지 않는 파푸아뉴기니산 원목을 오퍼하기로 한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한국의 합판회사들은 파푸아뉴기니 사정에 정보도 전무하고 파푸아뉴기니에는 주재원도 파견하지 않았을 때 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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