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민산업 Ⅱ

원목 오퍼상으로 많은 돈을 벌다
1975년 당시는 한국의 합판 회사들의 파푸아뉴기니에 대한 정보가 어두울 때 였다.
이경호 회장(당시 그의 나이 45세)은 한 달에 여러번 파푸아뉴기니를 몇 번씩 오가며 파퓨아뉴기니산 원목을 한국의 합판 회사들에게 오퍼했다.
특히 부산지역에 있는 합판회사들(동명목재, 성창기업, 광명목재, 대명목재 등)에 많은 오퍼를 했다. 당시 원목을 오퍼해서 팔면 ㎥당 1$씩 오퍼 피(fee)를 받을 때 였다. 가령 6,000㎥를 오퍼하면 6,000$를 받았다. 당시 환율이 400원정도 할 때 였으니 6,000$이면 한화로 240만원 정도 되는 돈이었다. 당시 240만원의 가치를 환산해 보면, 면목동의 44평짜리 단독주택이 200만원이었고, 서교동의 50평짜리 단독주택 전세값이 200만원 할 때 였다.
당시 합판회사 대졸 출신 초임이 3~4만원 할 때였고, 공무원 초임이 1만원 정도 할 때였다. 이경호 회장은 당시 많이 오퍼할 때는 1년에 60배를 오퍼했다고 한다.
1년에 1억5천만원을 벌었던 것이다. 물론 파푸아뉴기니까지의 왕복 항공료, 호텔비 등 경비로 3분의1은 썼겠지만, 70년대 당시 ‘뜨거운 안녕’이라는 노래로 인기절정에 있던 쟈니리 씨(現 77세)가 최근 텔레비전에 나와서 그 당시를 회고하는 것을 보았다. 당시 자기가 업소에 나가서 노래 3~4곡을 부르면 개런티로 1만4천원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쟈니리는 인천의 하인천에 있는 올림푸스 호텔(현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사회도 보면서 노래도 불렀는데 그때(1971년) 필자도 올림푸스 호텔 나이트클럽을 간 적이 있었다.
당시 올림푸스 호텔 나이트는 내국인은 출입금지였다. 주로 미국인이나 일본인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외국인과 동행하는 한국인은 입장을 허용했다. 올림푸스호텔 나이트클럽의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무대의 막이 오르고 쇼가 시작되면서 사회자 쟈니리의 손님을 반기는 멘트가 있었다. ‘올림푸스호텔 나이트클럽을 찾아주신 것을 환영합니다’ 로 시작해서 ‘아리가또우 고자이마스’, ‘땡큐베리마치’, ‘대단히 감사합니다’로 끝을 맺었다. 쇼가 시작되면 캉캉댄스 등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여러가지 무용이 펼쳐지면서 국제적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인천 가좌동에 제재소를 차리다
경민산업 이경호 회장은 1975년부터 3년간 원목 오퍼를 했다. 한창 많이 오퍼 할 때는 일 년에 배 60척을 오퍼했다고 한다. 배 한척만 오퍼해도 250만원 정도를 벌 때였는데 60배면 1억 5천만이다. 그때 돈을 많이 벌은 이경호 회장은 1978년(당시 그의 나이 48세)인천 가좌동 목재단지 내에 제재소를 차렸다.
1978년 당시에는 3천만원이면 제재소 하나를 차릴 수 있을 때 였는데 이경호 회장은 1억원이나 되는 자동화제재기를 일본에서 사와서 제재소를 차렸다. 디지털 캘리퍼스가 달린 제재기였다. 처음에는 주위사람들이 모두 망한다고 질책을 했다.
그러나 이경호 사장은 자동제재기로 인해 덕을 많이 봤다.
당시 다른 제재소들은 50명 정도로 제재소를 운영할 때였는데 경민산업은 12명으로 제재소를 운영했다. 12명으로 운영하다보니 우선 인건비가 적게 들었다. 뿐만 아니라 1980년 들어서면서 각 직장에 노사분규가 심해졌는데 다른 제재소들이 노사분규로 애를 먹을 때 경민산업은 단촐한 인원이라 노사분규 없이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당시 경민산업은 일본에 제재목을 많이 수출했는데 치수에 까다로운 일본 바이어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 자동 제재기로 제재하는 경민산업의 제재목은 치수가 정확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제재소들은 정확성이 부족하고 치수의 오차가 컸다.
경민산업은 일본 바이어들이 요구하는 품질을 맞추기 위해 건조 시설도 설치했다.

건조기술이 대단했다
1982년, 대성목재는 아프리카 원목을 수입했다. 약 2만㎥을 수입했는데 주 수종은 ‘아코(Ako)’와 ‘아이엘레(Aiele)’였다. ‘아코’는 합판재로 그런대로 사용살 수 있었으나 ‘아이엘레’는 엇결도 많고 건조도 잘 되지 않아서 합판재로 사용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엘레’는 시중에 판매를 했는데 판매도 잘 되지 않았다.
이런 시기에 경민산업의 문 이사는 ‘아이엘레’를 계속 사갔다. 후일 들은 얘기지만 건조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다른 제재소들이 건조에 애를 먹을 때 경민산업의 건조기술이 얼마나 좋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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