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물산 Ⅲ

효성물산이 대성목재를 인수한 배경
효성물산이 대성목재를 인수한 이유는 목재산업에 많은 관심을 가진 오너 조홍제 회장의 뜻도 있었지만, 재계 서열순위를 높이겠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1978년은 국내에 종합상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해였다.
현대를 위시해서 삼성, 대우, 선경, LG 등이 종합상사를 설립했고 종합상사에는 대부분 목재사업부가 있었다.
1978년 당시 효성물산은 현대, 삼성, 대우에 이어 재계서열 4위로 랭크돼 있었는데 재계 3위가 되려는 조홍제 회장의 뜻이 담겨 있었다. 재계순위는 주로 매출액 순위로 매겨졌는데 1977년 당시 수출실적이 5000만 달러에 달하는 합판회사를 인수함으로써 재계서열 순위를 바꾸고자 했던 것이다. 1978년 당시는 국내에도 건설경기가 좋아 합판수요가 급증할 때 였고, 수출도 잘되고 있어 합판회사의 전망이 좋을 때 였다.

효성물산 대성목재 인수팀
효성그룹(조홍제 회장)은 1978년 7월 5일 이사회를 열고 대성목재 인수를 위해 대성목재의 신임사장에 동양폴리에스터 사장인 이용철 씨를 선임했다.
드디어 이용철 사장을 비롯해 효성물산의 인수팀이 대성목재에 나타났다. 영업에는 박원규 상무(경기고, 서울대 상대), 자금에는 최해순 상무(서울대 상대), 총무에는 김영기 이사(감사원 출신), 무역에는 백영배 본부장(덕수상고, 연세대) 등 모두 효성물산에서 조홍제 회장의 신임을 받는 멤버들이었다. 1971년 신동아화재, 국제양품, 원풍실업 3개 회사가 공동으로 해서 대성목재를 인수할 때는 간부사원(상무급, 부장급)들은 그대로 남겨두고 인수했었다.
그러다보니 군부출신 황필주 사장이 영입한 군부 출신들의 상무급, 이사급, 부장급 간부들은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효성물산 인수팀은 대성목재에 오자마자 대리급 이상의 간부들 모두에게 사표제출을 요구했다. 며칠 후에 사표가 수리된 33명의 명단이 발표됐다. 사표가 수리된 33명은 주로 군부 출신들로 군부의 알음알음으로 입사한 사람들이었다. 조흥은행에서 파견된 간부사원들은 모두 그대로 남겨뒀다.
당시 대성목재에 근무한 사원이라면 누가보기에도 ‘저 사람은 그냥 월급만 축내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족집게같이 골라내서 사표가 수리된 것이다.
효성물산이 대성목재를 인수하기 직전에 대성목재를 그만둔 기획이사 H이사로부터 제보를 받고 왔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해외 주재원들은 예외
효성물산이 대성목재를 인수할 당시인 1978년에 필자는 대성목재 말레이시아 주재원으로 말레이시아 사바주(州) 타와우라는 도시에 주재하고 있었다. 해외에서 듣는 소식으로는 효성물산 대성목재 인수팀은 대성목재에 오자마자 대리급 이상의 간부들에게 모두 사표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는데, 해외 주재원들에게는 사표를 제출받지 않고 박원규 상무와 백영배 수입본부장이 직접 해외 순방에 나서서 직접 본인들에게 사표를 낼 것인지 아니면 계속 근무할 것인지 의향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대성목재 내에 자체 제재소
대성목재 만석동 제1공장에는 자체 제재소가 있었다. 1936년 일본인에 의해 제재소로 설립돼 해방되던 1945년 한국인 손병도 씨에게 운영됐다가 6·25전쟁이 끝난 1954년 천우사의 전택보 사장이 인수해 근대 합판공장의 틀을 갖춰 나갔다.
1970년대 합판 수출을 위해 수입한 라왕 원목에는 부적재가 포함돼 수입됐는데, 이들 부적재는 성림목재, 동양목재 등에 판매도 했지만, 자체 제재소에서 제재해서 판매도 했다.
만석동 제1공장 자체 제재소는 제제과로 명칭돼 운영됐는데 당시 제재과장에는 최창림 씨가 오랫동안 재직했다.
제재과 직원으로는 최병희 대리, 김승태 씨(現효산목재 대표), 안승룡 씨(現소남목재 대표)가 있었다.
당시 필자는 원목과에 근무할 때 였는데, 품질관리과에 근무하는 정봉수 씨(필자와 입사동기이자 학교선배)가 부탁을 해왔다. 당시 정봉수 씨의 부친은 서교동일대에서 집을 지어 파는 집장사를 했는데, 렝가스(당시에는 이태리 옻나무라고 불렸다)의 제재목이 필요하다고 했다. 렝가스가 들어오면 제재공장에 투입해서 제재를 해달라고 했다.
라왕 원목 한 배(약6000㎥)가 들어오면 렝가스 원목이 1~2개 들어올 때가 있었다. 렝가스 원목은 라왕 원목보다 두 배 정도 비싸게 팔리는 원목이었다.
그 후 정봉수 씨 부친이 지은 서교동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2층으로 지은 주택의 계단과 난간을 렝가스로 만들었는데, 붉고 광택이 나며 그 고급스러움은 말로 표현을 못할정도였다.

저작권자 © 한국목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