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원목재(廣源木材)

1980년대, 국내 최대 생산규모의 제재소
1980년대, 그때는 오늘날 선창산업 같은 대형 제재소가 없었고 인천만 해도 400개에 이른다는 수많은 제재소가 난립하고 있을 때였다. 부산, 군산, 대구 등 전국적으로 2500여개의 재재소가 있을 때였다.
당시 인천에 위치한 광원목재는 생산규모나 매출액, 공장규모 등을 통틀어 명실공히 국내 최대수준의 제재소였다. 1983년 정해진 사장이 창립한 광원목재는 인천 남동공단에 두 개의 공장과 만석동에 한 개의 공장을 두고 있었고 이들 세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재목은 하루 800㎥에 달했다(2004년 당시기준). 3개 공장의 규모는 8500평 이었다.

투자를 아끼지 않는 제재소
광원목재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 제재소다. 일반 보통 제재소들은 노동집약적으로 제재목을 생산할 때 광원목재는 자동화를 일찍부터 도입해 기술집약적으로 제재목을 생산했다.
첨단화된 기계시설로 인해 광원의 3개 공장 총 직원은 사무직원 포함 90여명 이내였다. 공정과 공정을 이어주는 부분에만 인력이 필요할 뿐 거의 모든 작업은 기계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자동화 시설은 하역기간을 포함해 원목입하에서부터 일주일이면 제품 생산이 가능했다. 광원목재는 뉴질랜드산 라디에타파인 원목을 전문적으로 제재했는데 수입량 또한 인천의 제재소중 가장 많은 양을 수입했다.

경쟁력은 저렴한 가격
광원목재는 현금거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현금결재를 하기 때문에 IMF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넘겼다. 광원목재의 또 다른 경쟁력은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이다. 1990년대 당시 소각재가 재당 500원할 때 광원목재는 시중에 450원에 팔았다. 일반 제재소들의 계산으로는 도저히 그런 가격을 맞출 수 없는 가격으로 시중에 판매를 했다. 시중가격보다 10% 이상 싸게 판매를 했던 것이다.
광원목재가 시중가격보다 10% 이상 싸게 판매할 수 있는 요인은 따로 있었다. 일반 제재소등은 CNF 120$대의 K-grade 원목으로 제재를 하지만 광원목재는 90$대의 펄프용 원목을 수입해 자동화된 시설로 빠르게 많은 양을 제재했다. 펄프용 원목을 제재하면 제재목 수량은 얼마 나오지 않지만 부산물(소위 말하는 화목)이 많이 발생함으로 이들 화목을 MDF 공장이 있는 동화기업 등에 판매해 손익을 맞출 수 있어 가능했다. 제재목 가격을 시중에 싸게 팔수 있는데에는 자동화 시설도 한몫을 했다. 자동화 시설은 인건비를 줄이는 장점이 있었다. 제재시 사용되는 톱날도 직접 제작해서 사용하며 지출을 줄였다.

빠른 속도의 매출액 신장
광원목재는 1987년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까다롭다는 일본시장에도 제재목을 수출해 품질면에서도 인정을 받았고 2000년대 들어 매출액도 빠른 신장을 했다. 2002년 10월에는 평택제재소 1공장을 가동해 2003년 매출액은 560억원으로 늘었고, 2003년 6월 평택 MDF공장을 가동해 2004년 매출액은 790억원이 됐고 2007년에는 매출액 1000억원에 달했다. 2011년에는 매출액이 1440억을 기록했다.

창업주 정해진 대표
1983년 1월, 인천의 남동구 고잔동 남동공단 내에 제재소를 설립한 정해진 대표(1954년생, 한양대 졸)는 처음에는 개인사업자로 출발했으나 1985년 7월 법인으로 전환했으며 1987년부터 1990년 중반까지 일본시장에 제재목을 수출하기도 했다. 1989년 12월, 산림청으로부터 수출기여를 인정받아 산림청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4년에는 국방부 군수본부에 조달업체 등록을 했다. 2002년 10월에는 평택에 제재공장을 짓고 가동했으며 2003년 3월에는 평택 제2제재공장을 준공함과 동시에 평택 MDF공장을 준공하고 그해 6월 MDF공장을 가동했다.
목재산업은 자연으로부터 혜택을 받아야만 존속할 수 있는 산업이라고 말하는 정해진 대표는 ‘약속을 잘 지키는 것, 직원들과 신뢰를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해진 대표는 창업 이래 직원을 해고한 경우가 단 한번도 없다. 정해진 대표의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은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마찬가지다. 광원목재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 중 무단으로 이탈을 하거나 2년의 연수기간을 채우지 못한 경우는 전무했다고 한다.
“가격을 너무 낮게 책정해서 낙찰을 받고도 제품을 납품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너무 저가경쟁을 하다보니 낙찰이 곧 손해로 이어져 쉽게 납품을 할 수 없었던 겁니다. 스스로 무덤을 팔 때가 있었죠”
정해진 대표는 목재의 수요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며 목조주택이 활성화되면 목재의 수요창출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목조주택이 활성화 되지 못하는 이유는 잘못된 소방법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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