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종합목재Ⅱ

라왕 제재목 수입판매
1981년 1월 1일부로 상호를 현대종합목재로 변경한 금강목재는 그 해 1월 20일 인도네시아에 설립한 합작투자회사로부터 라왕 제재목을 대량 수입해 자체 공장에서 사용하기도 하고 시중에 판매를 하기도 했다.

당시 연간 10만㎥의 라왕 제재목을 수입해 판매했는데 부산에 현대종합목재 영업소를 설치하고 영남지역 판매를 주도했다(1982년~ 84년 현대종합목재 부산영업소장으로 근무한 한상욱 씨(서울대 농대 임학과 졸)의 증언).

1982년은 인도네시아가 원목 수출을 금지하고 제재목 수출만 허용하기로 결정한 해였으며, 자국이 합판생산을 해 미국으로 직접 수출하기로 결정한 원년이었다. 한국에서는 합판산업이 사양화되며 수출량이 급격히 줄어들자 전두환 정권하에서 합판산업 구조조정이 이뤄져 부산지역의 태창목재, 반도목재, 광명목재, 대명목재 등의 합판회사들이 퇴출되고 라왕 원목 수입량이 현격히 줄어들고 있을 때였다.

1987년 조달청에 후로링보드 납품
1979년 공업진흥청으로부터 후로링보드 KS 표시허가를 획득한 현대종합목재는 1987년 한국목재공업협동조합이 조달청과 체결한 후로링보드 단체수의계약에 참여해 1988년까지 조달청에 후로링보드를 납품하기도 했다. 1987년에는 가구류 수출도 급격히 신장돼 1987년 5월말 실적이 1,000만 달러에 달해 86년 동기대비 2배로 늘어났다. 일본과 홍콩에서 300만 달러의 수주를 받는 등 대형주문들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현대종합목재 대표이사에 이명박 취임
1989년 현대건설 이명박 사장이 현대종합목재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1991년까지 3년간 대표직 수행). 현대종합목재 이명박 사장은 1990년 9월 14일 현대종합목재의 말레이시아 현지법인인 ‘싸임현대목재’의 생산능력을 대폭 늘리기로 하는 조인식을 가졌다. 이날 조인식에는 정주영 명예 회장(당시 75세)과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수상도 참석했다.

1990년, 러시아 산림개발
정주영 회장은 1989년 현대종합목재의 원종영 상무(서울대 농대 임학과 졸)를 대동하고 소비에트 연방(현 러시아)을 방문해 소련측 산림청과 스베틀라 지역 100만㏊의 산림개발을 하기로 합의하고 헬기를 타고 산림지역을 조사했다. 1990년 산림개발 계약서에 서명하고 벌채에 들어갔다. 당초 계약은 연간 100만㎥를 생산해서 30만~40만㎥는 일본으로 수출하고 나머지 60만~70만㎥은 한국으로 들여오는 것으로 돼 있었다. 처음 30만㎥까지는 무난하게 벌채됐다. 그러나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러시아로 바뀌면서 러시아측 산림청 관계자들이 바뀌고, 처음에는 호의적이었던 정책이 점점 불리한 정책으로 바뀌었다. 현대 측에서는 경제성이 있는 천연림부터 벌채하려 했으나 러시아측은 고사목부터 먼저 벌채할 것을 요구했고, 임도 이외의 도로 건설도 요구했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은 경제성이 없는 무리한 요구를 수용할 수 없어 1993년 벌채작업에서 철수했다(1990년 구 소련을 방문한 원종영 상무(당시)의 증언).

제재목, 원목 수입 대행 업무
1990년대 현대종합목재(사업본부장 원종영 상무)는 말 그대로 목재의 종합판매상사였다. 본사를 인천으로 옮긴 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로부터 제재목을 수입·판매했을 뿐 아니라 수입 대행 업무도 했다. 당시 대신목재(한상욱, 정완종 공동대표)에 라왕 및 MLH 제재목 수입대행을 해 줬고, 보성목재에는 뉴질랜드산 원목 수입대행을 해줬다. 뿐만 아니라 라왕 원목(주로 말레이시아에서 수입)의 수입을 해서 판매를 하기도 했고, 수입대행도 해줬다.

당시 현대종합목재는 업계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자기회사가 수입해서 판매하는 품목을 수입대행도 해줬기 때문에 수입을 의뢰한 회사는 공룡회사인 현대종합목재와 경쟁을 하는 처지에 놓였고, 품질도 자기들 것보다 못한 품질의 목재를 수입해 줬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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