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의 제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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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의 제재소
  • 김상혁 상임고문
  • 승인 2012.12.19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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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材産業史-제재산업편 47

1990년대의 제재소

도심 제재소, 소음, 분진공해 유발
지금도 일부 제재소들이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지만 1990년대에는 너무나 많은 제재소들이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서 제재소를 주민들이 살지 않는 곳으로 이전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상당히 일고 있을 때였다.

아직도 시내 중심도로에 길이 13~14m나 되는 원목을 실은 트레일러가 많은 자동차 사이를 비집고 운행되고 있고 주택가 인근에 자리 잡고 있는 제재소에서는 원목을 자르는 전기톱의 굉음이 인근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많은 제재소들이 변두리 공단으로 이주했으나 일부 제재소들은 공단 입주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지금까지 도심지에서 소음, 분진공해와 교통장애를 일으키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제재업체의 대부분이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으며, 제재소 대부분이 타인 대지를 임대해서 공장을 가동하고 있어 임대료 부담까지 안고 있었다. 자동화 추진은 엄두도 내지 못할 때였다.

당시 제재소 인근 주민들은 소음과 분진의 공해 뿐만 아니라 트레일러가 원목을 하차할 때 지름 30~50㎝, 길이 13~14m나 되는 수십 개의 원목이 한꺼번에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거대한 진동까지 일으켜 심한 고통을 겪었다. 특히 원목을 적재한 트레일러가 도로변에 위치한 제재소에 진입할 때는 제재소 주변에 극심한 교통장애까지 일으켰다.

당시 주민들은 “전기톱의 날카로운 소음공해도 문제지만 먼지(나뭇가루) 때문에 여름철에 창문을 열어 놓을 수 없는 실정” 이라며 제재소로 인한 소음과 분진 고통을 호소했다.

당시 A업체는 “주민들에게 소음과 분진공해의 고통을 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공장을 이전하고 싶어도 부지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시 당국이 부지를 마련해 주지 않으면 공장을 폐쇄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1990년대 인천, 대구, 부산 등의 도심 제재소가 인근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사례들이다.

1993년, 제재소들 물량 확보 비상
1993년 1월 세계적으로 목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의 많은 원목 수입상들이 원목을 확보하지 못해 국내에서는 원목 부족난이 일어났다. 필자도 당시 ‘(주)코마’ 라는 원목 수입상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국내 원목 파동은 3월까지 계속됐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가격을 비싸게 주더라도 물량 자체가 없었고 선창산업, 이건산업 등 합판회사들은 원재료인 원목을 구하지 못해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합판회사들은 원목을 구입하기 위해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 구매팀을 급파하기도 했다. 남양재 뿐 아니라 북미산 원목과 뉴질랜드산 원목도 중국의 수요 급증으로 물량확보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어려운 국제 상황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미국은 1992년 말부터 사유림까지 벌목을 규제해서 원목 생산량 자체가 크게 줄어들었고 뉴질랜드는 중국의 갑작스런 수요증가로 국내 상사들의 물량확보가 어려워 월간 수입량이 5500만재에 그쳤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원목수출을 규제하는 법령이 발령돼 수출물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당시 업계의 분석으로는 수요량이 예년과 비슷하더라도 수입 목재만으로는 20% 이상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목재 성수기를 앞두고 원목 수입량이 크게 줄어들어 원목 파동이 일어난 것이다. 삼성, 쌍용, 효성, 현대종합목재 등도 물량확보가 어려워 월간 도착물량이 통상 수요량의 70~80% 선에 불과한 8000만재에 그치고 있었다.

김상혁 상임고문   wwi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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