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익 나무친구들 대표이사
수십 년간의 은행원 생활을 쓰나미처럼 몰려 온 IMF관리체제로 인해 강제청산당하고 목재수입상으로 변신한 지도 어언 13년째가 됐다. 나름대로 청춘을 바쳐 꿈과 희망을 안고 매진했던 은행원이라는 직업을 1998년 6월29일 이헌재 금감위원장의 낭독문 한 장에 의해 황당하게 잃어버리고 졸지에 거리로 나앉게 된 충격으로 공황장애 일보직전까지 갔었다. 정말 기억하기 싫은 악몽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제와 회고하면 그 때의 절망과 막막함을 전해준 IMF의 유탄은 나만이 겪은 아픔이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한숨이었으리라. 나락에서 다시 시작해서 오늘에 이른 나의 IMF 탈출기는 곧 우리나라의 IMF 극복신화와 같은 맥락의 역경극복 스토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IMF라는 괴물이 대한민국을 덮쳤을 때 현재의 내 역할을 해 왔던 많은 선배 목재 수입상들이 당시 두 배 이상이나 폭등한 환율과 거래처의 연쇄부도, 상상을 초월하는 고금리 대출이라는 엄청난 악재와 장벽에 막히고 부서져 안정된 중산층에서 졸지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업계를 떠나간 그 분들의 고통과 비애는 누가 알아주고 위로해 줄까?
 아는 에이전트 한 분 없이 이 수입상의 대열에 뛰어들게 됐는지 생각해 보면 아직도 얼떨떨한 기분 떨칠 수 없다. 직접 중국의 동북 3성이나 남방지역, 러시아, 터키, 베트남을 돌아다니며 목재 공장을 탐문하고 상담을 하고 신용장을 개설하기까지는 정말 맨발로 뛰었다는 표현밖에 딱히 설명할 길이 없다. 발주한 목재가 인천항에 도착해서 보세창고에 들어오기까지 생소한 업무들…. 도착한 목재를 1톤 용달차를 구매해 싣고 다니며 수도권의 가구공장들과 합판도소매상의 문을 두드리던 일…. 목재에 대한 상식이 너무 부족해 선배 목재인들이나 임산학과 교수님들을 찾아다니며 교재 주세요! 가르쳐 주세요! 떼를 쓰던 그 시절을 이제 꿈이었던 것같이 회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에 잠깐 스쳐갔던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외환, 금융위기를 겪어내며 그때서야 10년 전의 목재 수입상 선배들이 느꼈을 불안과 고통이 내 피부에 와 닿기 시작했다. 또한 현재 내가 하는 사업이 그럭저럭 굴러가고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언제 또 다시 몰아닥칠지 모르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대비해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 또한 현재의 유행이 내일에는 물거품이 될지도 모르는 상품들을 생각하며 내일의 효자 상품은 무엇이 될 것인가를 쉬지 않고 생각해 봐야하는 오늘이다.
깊어만 가는 불황으로 치열해지는 매출경쟁 속에 원산지의 자원부족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되는 수입원가 인상 그리고 높아만 가는 소비자들의 기대수치와 안목을 감당해내는 것은 순전히 나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께 인정받고 업계에서 주목받는 목재업체로 성장하는 일... 아마 모든 목재인들의 희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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