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S. 운동이란 Big Brothers and Sisters Movement의 약자로서 미국이 총본산이며 청소년 선도와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범세계적인 봉사단체 이름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초에 부산에서 처음 B.B.S. 운동 연맹이 결성됐다.
 B.B.S. 운동 부산연맹이 결성된 지 얼마 안돼서 강석진 회장이 제2대 B.B.S. 운동 부산연맹 회장으로 추대되었는데, 그 후 15년 7개월 동안이나 회장직을 맡으면서 청소년 선도와 보호운동에 눈부신 활동을 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업적을 남겼다.
 강석진 회장은 회장직을 맡자마자 대대적인 조직의 개편을 단행하고 운영방침과 활동계획을 재정립했다.
우선 일체의 재정적 부담은 회장 자신이 맡기로 하고, 사회 각계의 명망 있는 인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권유했다.
 그리고 불우 청소년의 선도와 보호를 위해 먼저 그들로 하여금 자립정신을 심어주고 자활의 의지를 갖게 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리하여 1차로 부산 일원의 불우청소년 200명을 선정해 1인당 3000원의 생업자금을 지급했고, 각계의 협조를 얻어 그들의 직장을 알선해 주었다.
 회장 취임 5개월 만에 부산진구 양정동에 ‘직업소년회관’을 건립했고, 그해 12월에는 동구 좌천동에 ‘B.B.S. 연맹회관’(대지 128평, 건평 288평, 4층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건립했다.
 생업자금은 말할 것도 없고, 건물 신축에 소요되는 경비일체는 강석진 회장의 사재로 충당했다.
 ‘가진 사람은 가진 것으로 남을 도와야 하고, 배운 자는 배운 지식으로 남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 강석진 회장의 평소 지론이었다.
 그리하여 B.B.S. 운동 연맹의 산하 조직체로 ‘대학생 지도 위원회’를 만들어 불우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이 결연관계를 맺게 하여 이들을 선도하게 하였으며 연맹회관 내에 야간학교를 개설했다.
 형편이 어려워 배우지 못한 불우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 주고자 소정의 과정을 수료한 불우청소년들에게 검정고시를 보게 하여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시켜 학비 일체를 보조해 주었다.
 강석진 회장은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심정으로 사랑과 정성을 다하여 세심한 데까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기에 부산에서는 강석진 회장을 ‘B.B.S.의 대부(代父)’, ‘B.B.S.의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의 이러한 사랑의 정신은 나라 안팎으로 크게 알려져 대통령을 비롯한,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으로부터 많은 훈장과 포상을 받았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국무성의 초청을 받아 미국 내 B.B.S. 운동을 시찰했으며 B.B.S. 운동의 국제적 교류도 활발히 전개해 나갔다.

 

김상혁 wwic@hanmail.net
 

[2010년 3월 1일 제 2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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