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1972~1977)의 일환으로 창원기계공업공단이 1974년 4월 17일 설립되고 제 1차 기지조성공사가 1974년 12월에 완공되자 동명산업주식회사도 1975년 4월에 입주가 확정되었다.
 강석진 회장은 여러 가지 사업성을 고려하여 기지공단 내에 중앙에 위치한 1번가A-2블록(5만㎡, 약 1만5000평)을 선정하였고 10월 11일 신축공사팀을 창원에 보내 공장건물을 짓기 시작하였다.
 한편 동명산업의 기계 사업부는 생산품목을 선정하고 기계설비 및 장비도입을 추진하였으며 공장내에 설치할 Layout을 설계하고, 전체사업계획을 작성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기를 1년 6개월. 창원에서는 공장건물이 완공되었고(1977년 2월) IBRD 차관으로 도입한 기계설비와 시설재들은 2주일만에 창원공장으로 이송되어 곧 설치작업에 들어갔다.
 그 후 150여 명의 동명산업 인원을 부산에서 창원공장으로 파견근무를 하게 하였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도시권의 생활 근거지를 떠나 창원으로 발령나는 것을 내심꺼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자 회사로서도 그들의 생활편익을위한 여러가지 방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 회장은 종업원 아파트 부지 2000평(약 6612㎡)을 확보하고 가족용 아파트 및 독신자용 아파트를 지어 숙소문제를 해결토록 했다. 또한 부산-창원 간에 출퇴근버스를 마련해 많은 종업원들이 부산의 자택에서 새벽에 출발해 밤늦게 귀가 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창원공장근무자에게 각종혜택을 약속함으로써 직원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강 회장은 직원들에게 “앞으로 기계공업의 전망이 밝아질 것이다. 회사에서도 창원공장을 중점사업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앞날도 밝아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미국의 서부개척자 정신을 가지고 일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창원공장의 인력확보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뒤따랐다. 당시 기술인력의 수요는 극에 달하여 창원기지 내에는 타업체들의 스카웃 열풍이 불었고 그 열풍은 몇 년간 식지 않았다. 1977년 10월 인력이 대부분 보충되자 12월 28일 동명중공업이 정식으로 출범했다. 첫 사업은 전동지게차 생산과 일본 Yuken社의 유압기기를 수입, 판매하는 것이었다. 전동지게차 생산은 동명목재에서 수입 사용하고 있던 FBR형을 샘플로 삼아 자체 기술로서 국산화 한 것이었고 유압기기는 모든 기계공업 자동화의 필수품이었기 때문에 수익성보다는 사명감 측면에서 Yuken社의 제품을 수입, 판매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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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혁 기자 wwic@hanmail.net

[2009년 12월 16일 제 2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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