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목재상사 강석진(姜錫鎭) 회장편(24)
 
 
-- 1974년 동명산업 주식회사 설립 --
 
 
 박정희 대통령의 제3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1972~1977년)은 장기적인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산업으로부터 기술집약적인 중화학공업과 중공업육성으로 정책방향이 설정됐다.
 당시 중화학공업 분야는 울산석유화학이 정상가동에 돌입해 있었고 중공업 분야는 창원기계공업기지가 태동 전야에 있을 시기였다.
 합판 수출 선두주자였던 동명목재의 강석진회장은 중화학공업과 중공업분야에도 진출해야겠다는 뜻을 품고 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우선 중화학공업 분야 진출을 위해 동명목재합판공장 옆 3만여평(약99000㎡) 규모 부지에 1만여 평(33000㎡)의 건물을 짓고 동명목재에서 이미 가동 중이던 포르말린공장과 페인트공장 등 화학제품부분을 하나의 법인체로 독립시키는 체재로 전환, 1974년 11월 9일 동명산업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동명산업주식회사의 페인트공장은 일본의 大日本도료주식회사와 기술제휴를 맺어 최신 기계시설을 갖추고 새로운 합성수지도료개발에 힘을 기울였으며 가정용 도료인 ‘바둑이표 선데이 페인트’를 제조 판매하면서 국내 공급에만 연연하지 않고 수출산업으로의 기반을 다져나가는 등 종합도료메이커로서의 위치를 확보해 나갔다.
 포르말린 공장에서는 탈수소법을 이용한 제조공법으로 하루 150톤의 메탄올을 생산했으며 엄격한 품질관리로 일본 공업규격(JIS-KI502-63)을 획득했다.
 1975년 준공된 합성수지 공장에서는 이미 동명목재에서의 경험을 가진 연구진을 기반으로 바니쉬, 펜타헥사민, 포르말린화성품(化成品), 화공약품, 고무제품, 고압호스등을 생산했다.
 특히 페인트의 중간 원료인 바니쉬는 연간 2만700톤의 생산계획을 세우고 1975년도 수출목표 1800만 불을 설정했으며 그해 3월까지 일본 및 동남아로 270만 불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고무공장에서는 최신형크라운 연마기를 도입해 월 10톤의 고무원료를 가공처리했으며 각종 인쇄용 고무롤러(옵셋용, 활판용, 구라비아용)와 각종 공장용 고무롤러(합판공장용, 플라스틱공장용, 제철공장용, 모직공장용)를 생산했다.
 이와 같이 합판공장에 기반을 둔 중화학공업분야를 위주로 설립된 동명산업주식회사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일본 및 대만에 각종 수지제품을 수출했고 쿠웨이트에는 초산비닐 에멀전을 처녀수출하여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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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혁 기자 wwic@hanmail.net
 

[2009년 12월 1일 제 2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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