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1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지역자본을 집대성하여, 그 지역 발전의 극대화를 기하기 위해 지방은행 설치를 검토 추진할 것’이라는 정부의 방침을 밝혔다. 이에이어 당시 서봉균 재무부장관은 부산, 대구, 광주에서 지방은행의 설립희망이 있으면, 이를 허가할 방침이라고 언급함으로써 정부의 입장을 더욱 명확히 했다.(1967년1월18일) 이러한 발표가 있자, 부산지역에서는 부산은행 설립을 위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부산 상공회의소는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부산 지방은행(가칭) 설립추진위원회를구성했다. (1967년1월23일)

재무부와 한국은행은 출자 지침을 결정 발표 했는데, 내용인 즉, 지방상공회의소 회장을 중심으로 발기인단을 구성하되 출자에 있어서는 발기인단 만의 출자는 피하고 일반인들을 공모해 그들의 출자를 장려해야한다는것 이었다. 부산상공회의소는 발기인수를 60명으로 정하고 출자 공모를 시작했다. 그러나 신청 접수한 발기인은 32명뿐 이었다.

부산의 유력한 기업인들은 발기인 참여를 꺼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새로설립될 은행의 전망이 어떨지 모르겠으며, 시중 금리와 주식투자를 비교해볼때 수지타산이 불분명하고, 주식을 균등투자할 경우 강력한 발언권을 행사 할 수 없다는것 이었다. 이렇게 부산은행 설립이 지지부진하고 있을 때 강석진 회장이 부산상공회의소 제6대 회장에 선출됐다. (1967년8월)
 

강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부산상공인의 갈망으로 추진중에 있는 부산은행의 조속한 개점을 실현시키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기울일 것이며, 150만 부산시민의 은행으로 육성해 나갈것 입니다.’ 이러한 강 회장의발표가 있자, 일반기업인들의 참여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제반 설립추진업무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강석진 회장은 곧이어 개점사무를 전담하는‘부산은행 창립 사무소’를 설치하고 위촉직원 10명과 변호사2명을 법률고문으로 위촉했다. 드디어 1967년 10월10일 오후2시 부산은행 창립총회가 개최됐고, 총 238명의 주주 가운데, 143명이 참석한 이날 총회에서 임시의장에 강석진회장이 선임됐다. 1967년 10월25일. 대통령 연두교서가 발표된지 9개월 만에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은행인 부산은행이 탄생됐다. 역사적인 부산은행의 영업이 처음 시작되었던 것이다. 150만 부산시민을위한 부산은행의 문이활짝 열린 것이다.

이날 부산은행 예금통장 1호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20만원을 예금함으로써 부산은행 첫 고객으로 기록됐다. 다음해 4월6일, 부산은행은행창립에 지대한 공적을 남긴 강석진 회장을 부산은행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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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16일 234호

김상혁 wwi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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