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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6 0여만평에 연건평 5만여평의 용 당동공장의가동은더욱가속도가붙었다.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제 개발 1 차 5개년 계획을 발표했고, 미 8군에서 주 문한 합판생산과 미국으로의 수출합판 생 산, 군납품생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 경이됐다. 전국에 깔려있는 7 7개 대리점들은 서로 많은물량확보를위해치열한경쟁을벌이 기도했다. 용당동공장의기계설비만으로는각지에 서 몰려드는 주문량을 미처 소화해 낼 수 없었다. 그리하여 1 9 6 3년 9월에는 범일동 공장 에 있는 생산시설 설비 일체를 용당동 새 공장으로옮기기시작했다. 그리고는 미 8군에서 주문한 합판과 수 출합판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수출합판과 미 8군에서 주문한 합판은 제 품검사를 철저히 해야 하기 때문에 검사원 도점차늘려나갔다.뿐만 아니라 주문량이 많아지다 보니 단 중판 절삭량도 문제가되어 절삭기술의 쇄 신도다급해졌다. 강 사장은 세계제일의 품질을 가진 합 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의 필요성이 크다고 느꼈다. 이에강사장은사원들에게교육을시키기 시작했다. 원가의식, 절삭교육, 작업의표준 화, 인간관계등에대해서교육을시켰다. 그리고 책임성을 부여하기 위한 조직의 세분화필요성도느끼게됐다. 생산과를 발족시켜 초대 과장에 김오수 (金五洙) 씨를 임명했고, 종업원들을 기술 등급에따라기책(技責), 부책(剖責)으로나 누었다. 그리고하루한사람이일할수있는일의 분량을할당조정할필요성도느꼈다. 또한노무과를발족시켜노무관리도하게 했다. 노무관리는준비업무(로타리, 드라이 어, 단종판성형)와 완성업무(콜드프레스, 핫프레스, 다블쏘우, 검사)로 공정을 구분 해관리했다. 이 시기에 사내 분위기는 누구하나 시키 는 사람이없어도 불꽃튀기는 경쟁이 마치 전투를 방불케 했고, 사원 전체가 상하 혼 연일제가 돼자발적으로 합판을 만들어 나 갔다. 강 사장은 부지런히 일하는 근로자들과 식사 때 자리를 같이하면서 생활의 지혜, 사람의가치관, 연구와기술개발에대한얘 기를나누는것을일상화했다. 야간에도틈을내서통금이가까워올때 까지 근로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어려운사 정이 있는 근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주 며부모같이자애롭게대했다. 사원들의 복지를 위해서 신형 대형버스 7대를 구입해 통근버스로 사용토록 한 것 도이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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