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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회장의부인고고화여사는 1 9 1 0 년 3월2 0일 개성(開城) 고(高)씨 고장호(高長湖) 씨의 둘째 딸로 태어나서 불교를 숭 상하는전통적인가문에서성장했다. 그래서그런지바깥활동은되도록삼가하 고집안일에만전심하는성품의소유자였다. 평소에는 말이 적고 행동이 신중했으며, 음식솜씨도요리사에비교할수있을만큼 훌륭했고, 사람들에게 믿음성을 주는 너그 러운 마음씨는 대소가를 두루 화목하게 했 다. 인자한마음씨는고화라는이름의이미 지처럼담백한성품을지녔고, 평소에도화 장을잘안했다. 강석진씨가후일회장이되고난후에도 몸치장은물론얼굴치장도잘하지않았으 며, 사치와는 거리가 멀고 근검 절약을 생 활화하는습관을가진분이었다. 부인은 갓 결혼했을 때 방세 2 0원 하는 셋방살이를하면서남편이주는돈 1 3원을 갖고한달을지내면서남편에게는흰쌀밥 을주고자신은안남미로따로밥을지어먹 을만큼내핍생활을했다. 후일강석진씨가회장이되고난후에아 내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 듣고는 그 때 아 내가 그렇게 내핍생활을 해준 것이 고맙기 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사실을 좀 더 미리 알지못했던것이후회스럽기도하여,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잘해 주었을 것을 하는 마음에서자신을무척자책했고한다. 부인 은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조금씩 저축을 해나가기도했다. 언젠가는남편에게저축 한 통장을 내어 놓고 헐한(편집자注: 값이 싸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땅을 사자고 해강사장은‘이 많은돈이어디서 나왔는 냐’고 물었더니 부인은‘생활비를 쪼개서 한푼두 푼저축한돈’이라고말했다는 것 이다. 강석진 사장은 놀라서 한동안 말을 잊고 부인의 손을 잡아주며 고마워했다고 한다. 그때그돈으로남천동땅(현부산KBS 주 변땅)을산것으로알려지고있다. 여기서 강석진 사장의 사촌동생 강기수 씨의회고담을들어본다. ‘형수님은 형님 못지 않게 남다른 면을 보여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일제시대 때 형 님께서 돈을 벌어 좌천동에 좋은 단독주택 을 지었는데, 그때 일본 경찰은 통제 가격 을 초과했다는 억지를 내세워 형님이 잡혀 가서 조사를 받게 된 일이 있었는데, 이때 형수님께서는 추운 날씨에 일본 경찰의 조 사를받으며떨고있을남편을생각하면집 에있는자신과아이들이따뜻한방에서편 하게 잠 잘 수 없다고 하시며, 형님이 나오 실동안식구들을모두차가운마루바닥에 서지내게했습니다.’ 2009년 4월 1일 제 2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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