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창산업 제재공장 Ⅶ 2004년 4월, 최신식 제재공장 착공선창산업은 2004년 4월, 당시 제재사업부 팀장인 조창근 부장의 감독하에 제재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한양목재의 부지를 매입한 땅 8700평에는 한양합판의 합판공장 건물이 있었다. 하지만 합판공장의 건물은 제재공장으로 사용하기에는 천정 높이가 낮아서 합판공장 건물을 헐고 천정높이를 3.5m로 맞춰 제재공장 건물을 새로 지었다. 그리고는 독일 링크(Link)社와 계약한 설비(150억원에 계약)를 설치했다.독일 링크社의 갱립 쏘(saw)는 초당 2.5m의 속도로 원목을 제재하며 일일 생산 1000㎥의 제재목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다. 라디에타파인 원목의 말구기준 14㎝부터 45㎝까지의 원목 투입이 가능하다. 원목 투입은 사
선창산업 제재공장 Ⅳ선창산업의 MDF 제2공장이 한참 가동될 때인 2004년 5월, 필자는 정해수 회장(당시 77세)을 인터뷰하러 선창산업을 방문했다. 당시 77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허리가 꼿꼿하고 건강해 보이는 정해수 회장은 필자를 반갑게 맞이했다.당시 정해수 회장에게 뉴질랜드 정부가 원목 수출을 줄이고 가공재 위주로 수출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직후여서 앞으로 뉴질랜드가 원목수출을 줄이면 선창산업을 운영하는데 있어 원자재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정 회장은 필자에게 뉴질랜드에 가본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뉴질랜드에는 가본적이 없다고 하자, 정해수 회장은 “뉴질랜드는 어차피 원목을 수출하지 않고는 못 배길 나라”라고 하면서 “뉴질랜드는 항만과 가까운 구릉지에 라디에타파인이 많
○ 칠레산 파렛트재■ 수입량 - 증가추세최근 칠레산 파렛트재의 수입량이 증가하고 있다. 목재 파렛트재는 라디에타파인 원목의 생산지인 칠레, 뉴질랜드, 호주 등에서 주로 수입되고 있는데 그중 칠레산 목재 파렛트재의 수입량이 증가되고 있다.2013년 1~8월까지의 목재 파렛트재 수입량은 38만5000㎥로써 1~8월 제재목 수입량 111만2000㎥의 34.6%를 차지했다. 목재 파렛트 수입량 38만5000㎥중 칠레산 파렛트재 수입량이 24만4000㎥로 전체 파렛트재 수입량의 63.4%를 차지했고, 이미 작년도 수입량을 초과해서 수입되고 있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금년 말 칠레산 파렛트재의 수입량은 36만㎥이 될 전망이다. 특히 2013년 들어 월별로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고 작년 동기와 비교해도 증가추
선창산업 제재공장 Ⅴ선창산업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제재공장을 갖게된 이면에는 MDF공장이 있었기 때문인데 1999년 정해수 회장은 MDF공장을 또 하나 더 지을 계획을 세우게 된다.정해수 회장, MDF공장을 또 하나 더 지을 생각을 하다선창산업은 1994년 MDF공장의 가동을 시작한 생산초기에는 좋은 실적을 거두지 못했다. 생산을 시작한 첫 해인 1994년 10월 1일부터 1995년 9월30일까지의 매출액은 7억4200만원이었고, 이듬해에는 당초 계획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4억5600만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 다음해인 3년차(1996.10.1 ~1997.9.30)에는 당초 목표를 초과 달성해 280억원을 기록했다.그러자 선창산업 정해수 회장(당시 72세)은 MDF공장을 하나 더 지을
선창산업 제재공장 Ⅳ 선창산업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자동시스템 제재공장을 갖게 된 이면에는 MDF 공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창산업이 MDF사업을 하게 된 속사정을 알아보자.MDF 사업 참여배경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합판공장들의 원재료가 침엽수로 전환됐다. 선창산업 정해수 회장(당시 65세)은 MDF 공장을 지을 필요성을 적극 느꼈을 것으로 사료된다.합판공장의 수율이 55%라면 45%의 부산물이 발생하고 제재공장의 수율이 60%라면 40%의 부산물이 발생한다. 이 많은 부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여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며 그 부가가치를 최대로 높일 수 있는 사업이 MDF 공장의 건설이었다. 투자할 자본과 땅이 있다면 실현시킬 수 있는 사업이며, 더욱이 MDF 시장성이 있다
○ 국산 침엽수 합판■ 국내재고 - 부족한 편9월 들어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국내 수요는 다소 늘어나고 있으나 메이커들은 추석연휴로 인해 일주일간이나 휴동함으로써 생산량이 감소해 국내 메이커들의 재고는 거의 없는 편이다.■ 메이커들 - 가격인상 단행지난 8월 21일 중국산 합판에 대한 반덤핑판정이 나면서 중국산 합판의 수입이 줄어들 것을 예상한 국내 합판메이커들은 국산 침엽수 합판가격의 인상을 단행했다. 인천의 선창산업은 지난 10월 1일부터 5~6% 가격을 인상했으며 부산의 성창기업은 10월 7일 가격을 인상할 예정이며, 이건산업은 10월 10일 이후 가격을 인상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수요 발생메이커들의 가격인상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리점 등은 가격인상전에 합판을 구매하는 가수요현
선창산업 제재공장 ⅢMDF 사업 진출1994년 선창산업은 MDF 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선창산업이 MDF 공장을 건설한 것은 후일 선창산업이 제재공장을 대형화하는 원인과 동기가 되었기에 선창산업의 MDF 사업진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선창산업이 MDF 공장을 짓게 된 배경합판과 제재목만으로는 매출이익의 한계를 느낀 선창산업의 정해수 회장은 1993년 MDF 공장을 짓는 것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선창산업(오너 정해수, 당시 대표 이채득)이 MDF 공장을 지을 것을 검토하기 시작하는 1993년은 동화기업(1986년 가동), 대성목재(1989년 가동), 청담물산(1989년 가동), 거성산업(1991년 가동)이 이미 MDF 공장을 가동하고 있을 때 였으며 1993년 4월 동
선창산업 제재공장 Ⅱ1972년 5월, 인천 북성동 합판공장 가동선창산업이 합판공장을 서울 답십리에서 인천 월미도 북성동으로 이전 완료한 것은 1971년 12월이었다.1971년 12월, 공장이전을 완료했지만 기계 및 설비보완작업을 1972년 2월에 완료했고 다시 정밀한 점검과 시운전 과정을 거쳐 5월에 들어서야 본격 가동에 들어갈 수 있었다.1972년 7월, 제재공장 가동선창산업은 합판공장의 이전과 함께 제재공장 및 후로링 공장 이전도 함께 병행 추진했다. 제재공장도 수요기가 다가오기 전에 이전을 완료한다는 목표하에 1972년 3월 인천으로 옮긴 후 그 해 7월부터 생산을 개시했다. 제재공장은 수출품을 만들어 수출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 아래 건조 시설, 가공 시설도 함께 설
선창산업 제재공장 Ⅰ 인천에 위치한 선창산업은 합판공장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거대한 자동시설의 제재공장도 운영하고 있다.선창산업이 거대한 제재공장을 지은 이면에는 MDF공장이 있다. 선창산업은 1995년 MDF공장을 건설하며 MDF사업에 진출했고, 2001년 MDF 제2공장을 건설하고 MDF사업을 확장하면서 원재료공급의 문제에 부딪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창산업은 20 05년 거대한 제재공장을 지을 수밖에 없었고, 오늘날 그 제재공장으로부터 MDF 원재료의 50%를 공급받고 있다. 2010년 기준으로 봤을때 선창산업은 합판 매출이 33.3%, MDF 매출이 43.3%, 제재목 매출이 23.4%를 차지하고 있었다.선창산업의 출발은 연탄공장선창산업의 창업주 정해수씨(1928
○ 목재 파렛트재■ 수입량 - 증가 추세물자를 일정한 단위로 움직이는데 필요한 목재 파렛트를 만드는 재료의 수입량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2012년 우리나라 목재 파렛트재의 수입량은 55만8000㎥로 전체 제재목 수입량 162만3000㎥의 34%를 차지하고 있다. 목재 파렛트재가 많이 수입되는 이유는 국내 제재소에서 제재하는 것보다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이 가격이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파렛트재는 주로 라디에타파인 원목으로 만들어지는데 라디에타파인 원목의 생산지인 칠레, 뉴질랜드, 호주 등에서 수입되고 있다. 목재 파렛트재는 매년 수입량이 증가하고 있는데 최근 6년간 수입량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최다 수입국 - 칠레목재 파렛트재는 칠레에서 가장 많이 수입되고
경민산업 Ⅹ경민산업 2세, 이한식 대표2007년부터 부친 이경호 회장(現 83세)으로부터 경민산업을 물려받은 아들 이한식 대표(1959년생, 現 55세)는 현재 구조용 집성재시장이 활성화되고 있고, 대형 목구조 시장이 커지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다.“시장이 협소할 때는 몇 개 업체가 품질관리와 함께 시공에 대한 책임까지 졌지만, 수요와 함께 공급이 늘어나고 있어 제품에 대한 품질이 걱정된다”며 “구조용 집성재는 시공관리는 물론 제품을 제조할 때 철저한 관리도 매우 중요하다. 집성기술 자체가 품질과 성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수입산 구조용 집성재의 경우도 국내의 기후환경에 적합한지도 우려의 대상이다. 이런 걱정을 하는 이유는 최근 구조용 집성재의 공급량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며 공급량
경민산업 Ⅸ 집성재로 만드는 세상을 꿈꾸다1978년 작은 제재소로 출발한 경민산업 이경호 사장은 1995년 집성재로 만드는 세상을 꿈꾸며 구조용 집성재 생산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 경민산업은 우리나라 최고의 집성재 제조회사라고 하면 ‘경민’이라는 이름이 떠오를 정도로 업계 최고의 회사가 됐다.6년전부터 2세 경영이제 그 꿈은 그의 장남인 이한식 대표에게로 넘어갔다. 2007년 경민산업 이경호 회장(당시 77세)은 대표직을 큰 아들(이한식 씨)에게 물려주고 본인은 회장으로서 경영일선에서 뒤로 물러났다. 이경호 회장의 장남 이한식 대표(1959년생, 現 55세)는 1981년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1983년 ROTC장교로 제대 한 후 삼성에 입사해서 3년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