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MDF의 역사 Ⅷ2000년 3월 선창산업, 제2 MDF공장 착공이사들간의 찬반 논란은 있었지만, 결국 정해수 회장의 뜻대로 또 하나의 MDF 공장을 짓기로 확정한 선창산업은 1999년 6월, 새 공장을 짓기 위한 부지로 선창산업 옆에 위치한 한진그룹 소유의 토지 4,000평(인천 중구 북성동 1가 6-80)을 45억원에 매입했다. 토지매입을 한 정해수 회장은 1999년 11월, 일산 460㎥(년산 13만8,000㎥)의 MDF와 HDF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의 제2 MDF공장 건설 계획서를 작성했다.총 350억원을 투입해서 1년 6개월내에 공사를 마칠 것으로 계획했다. 그러나 2000년 3월, 막상 공사에 들어가자 설비 도입가격 인상 등으로 총 투자액은 500억원(외자 270억원, 내자
국산 침엽수 합판•12월 거래량 - 부진12월은 계절적 비수기이기도 하지만 워낙 경기가 좋지 않아 12월 거래량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따라서 메이커 삼자들의 재고는 증가 상태이다.•합판 업계의 고민최근 환율이 인상되고, 원자재인 뉴송 원목 가격도 인상되는 등 제조원가는 올라가는데 경기가 좋지 않아 수요는 적어져서 가격 인상도 못하고 있어 합판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더구나 남양재 베니어 가격도 170$에서 175$로 인상되는 등 가격 인상요인은 많아지는데 시장은 계속 좋지 않아 오히려 가격을 팔아야 하는데 더욱 속앓이를 하고 있다.•국내 가격 - 약보합합판 3社들의 공식적인 가격은 그대로인데 워낙 수요가 없자 판매 장려차원에서 비공식적으로 약간씩 다운해서 대리점으로 출고되
우리나라 MDF의 역사Ⅶ1994년 8월 한국카리화학, 군산에 MDF 공장 착공동양화학의 별도법인인 한국카리화학(당시 대표 이복영)은 1994년 8월, 전북 군산에 부지를 마련하고 400억원을 투자, 일산 560㎥(년산 17만㎥) 생산규모의 MDF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1980년 설립된 한국카리화학은 1992년 청구물산을 인수, MDF 사업부를 신설한 바 있으며, 공장착공 1개월후인 1994년 9월, 청구물산을 흡수합병 했다.1995년 10월 한국카리화학(현 유니드), MDF 공장 가동1994년 8월 착공한 한국카리화학 군산 MDF 공장은 독일의 큐스터스 프로세스社의 기계설비를 설치하고 착공한지 1년 2개월만인 1995년 10월 년산 17만㎥ 생산규모의 공장이 완공돼 가동에 들어갔다.M
우리나라 MDF의 역사 Ⅵ1995년 7월 선창산업, MDF 공장 가동선창산업(정해수 회장)은 1994년 6월 인천 북성동에 MDF 공장을 착공한지 1년 2개월만인 1995년 7월, 년산 9만㎥ 생산규모의 공장이 완공돼 시범생산에 들어갔다. 선창산업은 이 공장을 완공하는데 총 공사비 300억원(시설투자포함)을 투입했다. 실제로 공장이 완공된 것은 1995년 4월이었다. 그러나 기계설비 점검 등으로 인해 3개월 후인 7월에야 첫 생산을 했고 본격적인 생산은 10월부터 이뤄졌다. 공사에 투입된 업체만도 40개 업체(건축, 기계설치, 전기설치 등)가 참여했으며 참여 인원도 외국의 MDF 전문가 등 연 2,100여명이나 됐다. 선창산업은 이 공장을 지을때 다른 회사와는 달리 어려움이 많았다. 합판공장에
우리나라 MDF의 역사 Ⅴ1993년, 선창산업도 MDF 공장 건설 추진합판과 제재목만으로는 매출이익의 한계를 느낀 선창산업의 정해수 회장(당시 65세)은 1993년 MDF 공장을 지을 것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선창산업(오너 정해수 회장, 당시 대표 이채득)이 MDF 공장을 지을 것을 검토하기 시작하는 1993년은 동화기업(1986년 가동), 청담물산(1989년 가동), 대성목재(1989년 가동), 청구물산(1990년 가동), 거성산업(1991년 가동) 5개 MDF 공장이 가동되고 있을때였고, 1993년 4월 동화기업이 또하나의 MDF 공장을 짓고있을 때였다. 그렇기 때문에 선창산업으로서는 MDF 공장을 지을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많은 검토를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해수 회장의
○ 뉴송 원목■ 12월 수출가격 - 보합(129$/㎥)뉴질랜드 라디에타파인 원목(일명 뉴송 원목)의 12월 대한(對韓) 수출가격은 11월 수출가격과 같은 129$/㎥(CNF인천, A-grade기준)에 결정됐다. 이는 중국이 겨울철 비수기를 맞이해 수입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점과 뉴질랜드는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약 2주간의 휴일로 인해 생산량이 감소되는 점이 맞물려 일어난 결과라고 분석되고 있다. 한편 대 중국 12월 수출가격은 130$/㎥(CNF중국, A-grade기준)에 결정됐다.■ 뉴송 원목 국내 수입량2014년 1~10월까지의 국내 뉴송 원목 수입량은 212만7천㎥으로 월평균 21만㎥이 수입됐다. 작년 동기에도 212만9천㎥이 수입돼 월평균 21만㎥이 수입된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가
우리나라 MDF의 역사 Ⅳ1990년 MDF 국내 생산량1990년 국내 MDF 생산량은 25만㎥였다. 수입량은 11만㎥으로 1990년 당시 국내 수요량은 35만㎥에 달했다. 1년전인 1989년의 수요량(24만㎥)에 비해 50%나 늘어났다. 1988년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태우 대통령의 공약대로 5년간 200만호를 짓기 위해 매년 40만호 이상의 아파트가 지어졌고 그에 따른 MDF의 수요도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이었다.1990년 당시 국내 MDF 생산량을 업체별로 보면 동화기업이 6만6천㎥(1986년 10월 가동), 청담물산이 6만7천㎥(1989년 8월 가동), 대성목재가 6만6천㎥(1989년 10월 가동), 청구물산이 5만3천㎥(1990년 8월 가동)이상 4개 회사가 가동돼 총 생산량이
MDF의 역사Ⅲ1989년, 국내 MDF 시황1989년말 국내 MDF 생산량은 동화기업이 풀가동돼 6만6천㎥을 생산했고, 청담물산이 8월부터 5개월간 가동돼 2만8천㎥을 생산했고, 대성목재가 10월부터 3개월간 가동돼 1만6천㎥을 생산해 국내 총생산량은 11만㎥에 달했다. 1989년말 MDF 수입량은 13만㎥였다. 따라서 1989년 국내 MDF 수요량은 24만㎥에 불과했고, 그중 국내 생산비율은 전체 수요량의 46%에 불과했다. 국내 생산이 전체 수요량의 반에도 못미치는 상황이었다. 당시 아파트 내장재의 고급화 추세에 따라 MDF의 국내 수요는 늘어나고 있어 공급부족 현상이 있었다.1989년 4월, 청구물산도 군산에 MDF 공장 착공동양화학 계열의 청구물산(구 청구목재(합판회사)로써, 1988년
○ 솔로몬산 원목■ 12월 산지가격 - 5$ 정도 인하될 듯우기로 접어들고 있는 솔로몬은 원목 생산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다행히 중국과 인도의 매수세가 약세여서 산지수출 가격은 11월 가격보다 5$ 정도 인하돼 오퍼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이 선호하는 딜레니아 원목 가격은 인하되지 않을 것으로 보여 ㎥당 200$(FOB)에 오퍼될 것으로 전망되며 타운 원목은 245$/㎥(FOB), PQ 원목은 225$/㎥(FOB), 부켈라 원목은 195$/㎥(FOB), SH 원목은 195$/㎥(FOB), 하드MLH 원목은 170$/㎥(FOB)에 오퍼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가격 - 보합솔로몬산 원목 국내 판매가격은 보합세이다. 11월에 입항된 원목부터 재당 50원씩 인상할 계획이었으나 국내의
MDF의 역사 Ⅱ1987년, 당시 MDF의 국내 소비성향우리나라 MDF산업의 초창기인 1987년의 MDF 연간 수요량은 15만㎥를 상회할 정도였다. 오늘날 연간 수요량 170만㎥에 비하면 아주 미미할 정도였다. 1986년 10월부터 동화기업의 MDF 공장이 가동하기 시작했으나 주로 5.5㎜두께의 MDF만 생산됐다. 1987년 MDF 수입량은 연 8만㎥정도였는데 수입 MDF는 주로 3.6㎜두께의 얇은 규격이 많이 수입됐다. 1987년 당시 MDF의 주요 소비처는 텔레비전 제조회사, 오디오 음향기기 제조회사 등이었는데 텔레비전 브라운관의 뒷판, 오디오전축의 스피커박스 제작 등에 주로 사용됐다. 사실 브라운관 TV의 뒷판이나 오디오스피커박스의 옆면, 뒷면 등에 사용되는 MDF는 강도가 그리 필요 없는
MDF의 역사 ⅠMDF 산업의 태동우리나라 MDF의 역사는 파티클보드보다 21년 뒤에야 시작된다. 파티클보드 공장이 1965년에 처음 세워졌는데 MDF 공장은 그로부터 21년 뒤인 1986년에 국내에 처음으로 설립됐다.1984년, 동화기업 MDF 공장 건설 추진동화기업이 MDF 공장을 건설할 것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4년은 국내 합판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잃고 사양화 추세를 보일 때였다. 합판제조의 원재료인 원목은 연일 가격 상승을 했고, 그나마도 수입물량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만들어진 합판은 수출이 잘되지 않아 합판산업은 점점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합판공장들이 시련을 겪고 있을 때였다.1980년 5월, 부산의 동명목재가 문을 닫았다. 이어서
○ 뉴송 원목■ 11월 가격 - 129$/㎥(4$ 인하)뉴질랜드 라디에타파인 원목(일명 뉴송 원목)의 11월 수입가격은 10월 가격보다 4$ 인하된 129$/㎥(CNF 인천, A-grade 기준)에 결정됐다. 11월 1일부터 선적되는 원목은 ㎥당 129$을 적용받게 된다. 이는 중국이 겨울 비수기를 맞이해 수입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점과 뉴질랜드는 봄철을 맞이해 생산량이 늘어날 것에 대비하는 점이 맞물려 일어난 결과라고 분석되고 있다.■ 국내 수입량2014년 1월부터 9월까지의 뉴송 원목 수입량은 189만5천㎥으로써 월평균 21만㎥이 수입됐다. 작년 동기에도 188만3천㎥이 수입돼 월평균 21만㎥이 수입됐으므로 우리나라는 가격변동에 관계없이 꾸준히 월 21만㎥ 정도를 수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