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목재 회장 강석진 씨(77)가 1984년 10월29일 오후 1시 부산시 남천동 7번지 그의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강석진 회장은 1925년 부산에서 동명목재를 창설, 70년대 고도성장 붐을 타고 합판수출로 한 때 개인소득 전국 1위를 기록했으며 1967~76년 부산상공회의소 회장과 대한상의 부회장을 역임했다. 1977년 동명불원, 동원공고, 동원공전 등을 설립했고 1978년 동명중공업을 설립했으나 1980년 5월 동명목재 도산 이후 은거해왔다. 유족은 미망인 고고화 씨(75)와 1남 2녀, 맏사위는 멕시코 대사를 지낸 장상모 씨, 둘째 사위는 법무장관을 지낸 배명인 씨다.강 회장은 동명목재 도산 후 4년 동안 분탄의 나날을 보내다 1988년 명예회복이 되는 것을 보지도 못한 채 운명했다.
(아래 내용은 강석진 회장이 동명그룹 도산 이후 2년이 지난 1982년 직접 녹음한 것을 기록한 것으로 마지막 한(恨)을 남긴 내용의 일부이다.)오늘 나는 과거에 있었던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고 싶습니다. 이제 본인은 나이가 나이니 만큼 그다지 욕심은 없습니다. 또 내 인생을 통틀어 욕심을 낸 바도 없습니다. 나는 정치인도 아니고 정치를 해 본 바도 없습니다. 다만 정치를 조금 도와준 바는 없지 않습니다.그것은 박 대통령과 나와의 인간적인 관계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정치적으로 이용한 적은 없습니다.그러나 이것을 흠으로 잡아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나의 재산을 헌납하겠다는 양 되어있는 것은 시인하겠지만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가둬놓고
정부의 녹색성장정책에 부응해 산림청이 2008년 12월부터 목재펠릿사업을 추진한지 2년이 흘렀다. 산림청의 목재펠릿사업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시기 상조다’, ‘성공이다’, ‘실패다’ 라는 등 여론이 분분한 가운데 2년간 추진됐다. 2년간의 성과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지, 산림청 목재펠릿사업의 모든 것을 살펴보기로 한다. ■ 목재펠릿사업 2년간 추진실적1. 농가용(가정용) 목재펠릿 보일러 보급실적 · 현재 목재펠릿보일러 가격은 370만 원(국산30kw, 30~40평 난방용 기준) 정도인데, 농가에서는 110만 원에 살 수 있다. 농가구입금액이 싼 이유는 농가에서 목재펠릿보일러 구입시 정부에서 보일러 가격의 70%를
보안사는 재산 포기각서를 받아내기 위해 1980년 6월18일 강석진 회장과 그의 아들 강정남 사장을 감금시켰고, 동명목재가 문을 닫은 7월5일 이후에도 계속 감금상태를 유지하다가 7월30일이 돼서야 귀가 조치했다.그에 앞서 7월26일, 국보위 비상대책상임위원회는 동명목재와 계열회사 처리를 위해 강정남 사장은 당분간 수사본부의 보호 하에 있어야 할 것이며, 강석진 회장은 부도수표 단속법 위반이 입건 유보됨에 따라 자택에서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강석진 회장은 감금상태에서 풀려나기는 했지만 가택연금은 계속됐다. 거주지를 지정해 놓고 감시원이 24시간 따라 붙었다.허가한 사람 외에는 면회도 할 수 없게 했고, 전화통화도 자유롭게 할 수 없게 했으며, 화장실을 갈 때도 감시원이 따라 붙었다.이러
산림청 목재생산과 안의섭 주무관은 최근 “산림청은 목제품 품질 단속을 위한 시행 계획을 마련하고, 내년 상반기부터 전국에 생산 또는 유통되는 목제품 품질에 대한 사후관리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산림청은 현재 국립산림과학원장에게 위임돼 있는 ‘규격·품질 표시 단속 권한’을 지방 5개 산림청으로 이관해 ‘목제품 품질단속반’을 설치하고 단속인력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산림청 측은 “규격·품질표시 위반 행위를 근절해 고품질 목제품을 공급하고 목재사용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한다”며 “EU 이사회의 경우 불법벌채에 의한 목재와 목제품이 EU 시장에 수입 판매되는 것까지도 규제하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지방산림청 단속반 설치를 위해 각 산림청마다 연간 1억 원씩 총 5억 원의 사업비를 책정해 놓은
동명왕국을 이루었던 부산시 용당동 앞바다.통나무 원목이 떠 있던 ‘저목 도크’에 낚시꾼이 줄을 잇는다.수출용 합판을 실어 나르던 컨테이너 차량행렬도, 원목을 자르던 톱니의 소음도 멎었다. 합판왕국 동명목재(창업주 강석진, 72세)가 문을 닫은 지 7개월이 지난 시점이다.주인도 종업원도 뿔뿔이 흩어졌고 텅 빈 공장건물과 굴뚝만 우뚝하다. 흥청대던 한 때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고, 회사 앞 18개 식당 중 12개가 문을 닫았다.111가구, 534명의 동민이 줄었고 용당국민학교 학생도 100여 명이나 학교를 옮겨갔다. 정문 앞 금삼차집 주인 임영자 씨(42세, 여)는 앉을 자리 없이 붐비던 것이 지금은 하루 1~2잔도 안 팔린다고 말했다. 전주식당 주인 이여기 씨(31세, 여)도 종전 하루 1
합성목재는 木材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木材로 취급할 수 없는 건축용재다. 통관도 木材類(HS4400)로 통관되지 않고 플라스틱제의 건축용품(HS3925)으로 통관되고 있다. 산림청도 이것은 목재가 아니니 품질인증에 대해서도 왈가왈부할 수 없다고 한다.산을 오르는 계단에 방부목이 자주 사용되고 있었는데, 이것이 오래가지 않아 썩어서 푸석푸석해지고 있는 사이 전국의 산하는 합성목재로 뒤덮이고 있다. 덕분에 합성목재 제조공장들은 밀려드는 주문량에 밤을 세워가며 생산을 하고 있는 지경이란다.여기서 우리는 합성목재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보며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보기로 한다. ■ 합성목재(合成木材, Wood Plastic Composite)합성목재는 말 그대로 나무의 성분과 플라
동명목재상사(대표 강석진)가 2개월간의 장기휴업 끝에 1980년 7월5일 정식으로 문을 닫았다.이날 회사 정문에는 ‘7월5일부터 종업원 3088명을 해고한다’는 공고문이 나붙었다.문을 닫은 동명목재상사에는 이날 정비원 56명을 비롯, 200여 명의 사무직이 출근해 잡무처리를 했다. 부산시 지역대책위원회는 강 회장의 부인 고고화 씨와 아들 강정남 씨가 보증을 서도록 해 동명목재의 주거래은행이었던 제일은행으로부터 30억 원을 대출받아 근로자들의 밀린 임금(6월부터 7월5일까지)과 퇴직금을 7월16일 이전에 지급키로 했다.한편 부산시 지역대책위원회는 노동청과의 협의를 통해 해고당한 종업원들을 성창합판, 대성목재, 한양합판 등 동 업종의 합판회사에 우선 취업시킬 방침을 정했다.이에 앞서, 제
■ 일본 임지잔재 자원화 조사목적국내 건설경기의 침체와 건축물 축조공법의 변화에 따라 건설 폐목재가 점차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또한 동시에 폐가구의 배출이 감소해 폐목재 공급 감소를 부추기고 있다.그러나 폐목재에 대한 수요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목질계 열병합 발전소가 신설 또는 증설되고 있고, 전력사업자가 시장에 진입함으로써 폐목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감소한 폐목재량과 늘어난 수요는 폐목재를 원재료로 하는 산업에 큰 걱정거리가 되고 있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새로운 목질자원 발굴에 나서고 있다. 그 중 유일하게 남은 산림에 쌓인 임지잔재를 자원화하는 방법이 대두되고 있으며, 이는 저탄소녹색성장이라는 국가 정책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라 판단된다. 이에 현재 임지잔재
보름 동안만 휴업하기로 했던 동명목재가 좀처럼 재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어느덧 한 달 열흘이 지났다.1980년 6월 18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기업윤리정화정책의 일환으로 동명목재의 사주인 강석진 회장과 그의 장남 강정남 사장, 강 회장의 처 고고화 씨 등이 쓴 재산양도각서의 이행여부와 은닉재산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국보위는 이번 조사가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잘 산다’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와 타락한 기업풍토를 척결해서 근로자들 위에 군림하는 악덕기업행위가 발붙일 수 없도록 하자는 데 그 목표가 있다고 밝히고 동명목재의 재무구조를 개선해 안정된 조업기틀을 마련함으로써 기업도 살리고 3700여 종업원의 생업을 보장하는 데 1차 목표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정부당국은 강석진
동명 휴업 일주일째인 1980년 5월14일, 당시의 야당인 신민당의 김상진 국회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진상조사단이 구성돼 동명목재의 휴업사태에 대한 진상조사차 부산으로 내려갔다.조사단 일행과 보도진 등 20여 명은 동명불원 내에 있는 강석진 회장의 별당에서 강 회장을 만나 면담을 시작했다.김 의원: 과연 소문대로 별장이 화려하다.강 회장: 이 정도는 서울 사람의 일반 집 규모 밖에 안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서울 살면서 약삭빠른 처세술이나 배워둘 걸 그랬다.김 의원: 지금까지 수출을 주도해온 동명이 왜 이 지경이 됐나?강 회장: (담담한 표정으로)내가 고구마로 끼니를 떼워가며 동명을 키우면서 지금까지 낸 세금만 180억 원에 이른다. 50년 전에 400원을 들여 시작한 동명이 이렇
사실상 폐업이나 다를 바 없는 휴업상태에 들어간 동명목재가 과연 다시 정상가동에 들어가 동명목재 본래의 위치를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구제금융을 주는 방법▲은행관리업체로 만드는 방법▲타 기업에 인수시키는 방법▲정부가 인수하는 방법 등 다각적인 해결책이 논의됐지만 정부차원에서의 대책이 서지 않는 한 어느 방법이건 어렵다는 게 지배적인 중론이었다.1980년 4월 말 부산지방에서는 1백여 업체가 휴·폐업(휴업 40개 업체, 폐업 60개 업체)을 했으나 모두 중소기업이어서 업종별로 타 업체로의 고용흡수가 가능했지만 동명의 경우는 달랐다. 3700여 명의 집단 실업사태는 합판업종이 사양산업이 아니라 하더라도 수용이 어려워 실업사태를 부채질하게 될 것이었다.
일본과 한국의 목재수급량을 양적측면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국토면적도 크고, 삼림면적도 크고 축적량도 많고 인구도 많아 목재사용량도 우리나라의 3배정도 사용한다는 것은 목재인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다만 여기서 일본과 한국의 목재수급량을 비교하고자 하는 것은 목재수급량의 산출형식을 비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본은 목재공급량이나 목재수요량을 산출하는데 있어서 우리보다 좀 더 세부적인 항목으로 나누어서 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국내재와 수입재의 용처가 좀더 명확히 세분되고 있다.매년 목재수급량을 발표하고 있는 우리 산림청도 좀 더 세분화된 항목으로 목재수급량을 산출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 2009년, 일본
휴업 이틀째인 9일, 동명목재 근로자 3천여 명은 회사에 정상출근해 동명 재건을 위한 농성을 계속했다. 근로자들은 이날 오전 10시 강정남 사장을 불러 그동안의 경위와 해명을 듣고 재산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회사에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강석진 회장은 그날 오후 근로자들의 농성장에 나와 ‘오늘의 사태에 죄책감을 느낀다. 말년에 이 같은 지경에 이르니 죽고 싶은 심정이다’고 말하고 ‘모든 재산을 근로자 여러분들에게 되돌려 주겠다’고 약속하며 이를 각서로 써냈다. 동명조합 정상화 추진위원회(위원장 윤용웅 자재부장)는 강씨 일가족의 전 재산이 회사에 환수되는 대로 주식회사를 설립할 움직임을 보였으나 이들 개인재산이 주식회사로 넘겨질 경우 증여세 70억 원과 양도세 등을 포함 200억 원이 소요될
지난 5년간의 세계 MDF의 생산량과 수요량을 비교해보면, 생산량이 수요량을 초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세계 최대의 MDF 생산국가인 중국만해도 자국의 수요량을 초과 생산해서 세계 각국에 수출하고 있고, 돌일, 태국,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호주 등도 자국 수요량보다 훨씬 많은 양을 생산해서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는 수요량보다 생산량이 모자라서 매년 20% 정도를 수입하고 있다. 일본도 자국 생산량이 모자라서 매년 50% 정도를 수입하고 있다.그러나 세계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매년 수요보다 생산이 훨씬 많이 이뤄지고 있다. 더구나 세계 MDF 수요량은 앞으로 더 이상 늘지 않을 것이 전망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 MDF 산업은 국제적으로 구조조정 돼야 할 산업으로
동양 최대의 합판 메이커였던 동명목재는 1980년 5월8일 문을 닫게 된다.그동안의 경영적자를 은행 수혈로 메워오던 동명목재는 은행이 ‘회복 불능’ 판정을 내리고 추가지원을 중단하자 원목 살 돈이 없어 휴업이라는 비상대책을 쓴 것이다.은행이 마음을 돌려 구제금융을 내지 않는 한 휴업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었다. 동명의 주거래 은행인 제일은행은 이미 1년 전부터 은밀히 채권확보에 착수한 상태였다. 동명을 포기하더라도 현 단계에서 몇 십억 원선인 은행의 결손이 더 커지기 전에 발을 뺀다는 것이었다. 만약 동명의 은행 빚이 훨씬 더 많았더라면 은행이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계속 대지 않을 수 없었을 테고 동명도 문을 닫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925년 부산시 동구 좌천동 67번지 150여 평의 창고건
■ 러시아산 원목 수출세 인상으로 수출량 감소러시아산 침엽수 원목의 수출세를 6%에서 25%로(2008년 1월1일부) 인상한 러시아는 수출세 인상으로 인해 국고에 보탬이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2008년 러시아산 원목 수출량은 2007년 대비 25% 감소를 보였다.여기에는 중국의 수입 감소가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러시아산 원목을 연간 2500만㎥씩 수입하던 중국이 2009년부터는 연 1500㎥만 수입하고 있고, 한국과 일본도 러시아산 원목 수입량을 줄여가고 있는 실정이다.2009년 1월1일부로 침엽수 원목 수출세를 80%로 인상하겠다고 큰소리치던 러시아는 2번씩이나 인상 시기를 연기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 시행이 불투명한 상황이다.그렇다고 수출세를 면제해주고 있는 제재목 수출이
■ 북미산 원목 中國, 등급 불문 싹쓸이 구매2009년 말부터 중국의 북미산 원목 구매가 증가하고 있다. 2조4500억 달러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은 위안화 강세를 앞세워 북미산 원목까지 싹쓸이 구매를 하고 있다.중국 국내의 맨션 건설과 공공사업에 이용되는 토목용재, 주택용, 포장용까지 수요가 확산돼 북미산 원목을 대량 수입해 가고 있는 추세다.예년에 중국은 흉고직경 30.3㎝ 이상의 원목과 하등급 원목을 중심으로 수입해 갔었지만, 최근에는 등급을 구분하지 않고 정해진 임구(林口)로부터 반출재를 그대로 매입하고 있다.1S급(상등급재), SS급 등 모든 등급의 원목을 포함해 매입해가고 있다. 중국은 박피한 원목을 수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워싱턴주 롱뷰와 타코마
최근 몇 년 사이에 세계 목재류 흐름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러시아의 침엽수원목 수출세 인상은 중국으로 하여금 러시아산 원목의 수입을 자제케 하고, 뉴질랜드산 원목과 미국, 캐나다 원목으로 방향을 돌렸고, 중국의 내수 발전 정책은 미국과 유럽의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중국 위안화의 강세를 앞세워 세계 목재의 블랙홀 역할을 하고 있다.최근 5년간의 각종 통계와 보고서를 근거해서 앞으로 30년 후를 예측해 보고자 한다.■ 뉴질랜드산 원목 뉴질랜드 원목 수출 1080만㎥ 예상(2010년)2009년 4월부터 중국의 뉴질랜드산 원목(Radiata pine)의 월 수입량은 40만㎥로 증가했으며, 2010년 들어서는 월 50만㎥씩 수입하고 있다.2009년 3월 이전에는 한국이 최대 수입국으로서의
동명목재에 대한 신규대출은 계속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계속된 금융지원 중단은 원자재인 원목 확보를 할 수 없게 했고 드디어 동명목재 이사진들은 1980년 5월 6일 오후 3시부터 7일 새벽 4시까지 철야회의를 한 끝에 15일간 휴업에 들어갈 것을 결정했고 그날 오전 10시, 3천여 명의 종업원이 모인 가운데 합판공장의 조업을 15일간 중단한다는 발표를 하게 된다. 당시 동명목재 전무인 이필윤 씨(당시 48세)는 눈물을 머금으며 “한 때 국내 최고의 수출실적을 자랑했던 우리 동명은 계속된 합판 수출의 불황과 잇단 자금난으로 더 이상 원목확보를 할 수 없어 정부의 뚜렷한 대책이 있을 때까지 15일간 휴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고 말했다.당시 동명은 800억 원의 자산 중 500억 원 이상